홍헬렌송귀의 마음요리

  • 등록 2025.04.23 12:42:52
크게보기

환대의 열매들


‘차가운 겨울날 그리고 이제 따뜻한 봄날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려 합니다.

서로에게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저희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 주세요.’

 

라일락 빛 엽서가 담긴 투명봉투, 결혼 준비를 완벽하게 마무리한 아들의 청첩장을 건네는 친구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세월의 주름살마저 활짝 펴진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돌아서는데, 10여 년 지나버린 내 아들의 결혼 이야기가 내 마음에서 솔솔 피어난다.

 

스물다섯 살, 대학원 1학년을 마친 아들은 뜬금없이 결혼 얘기를 꺼냈다. 지금 아니면 결혼할 시간이 없다며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잠시 들러 신부감을 소개했다. 젊은 날 준비한 국가 고시를 1년 앞둔 이 친구,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말리면 공부가 안될 것이고, 허락하면 학비와 생활비가 고민이다.

 

자식의 결혼 적령기에 대해 평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둘의 사랑은 젊은 열정만큼이나 뜨겁고, 결혼하기에 손색이 없다며 승낙을 청한다. 두 사람은 바로 결혼식을 진행하고, 꽃다운 나이의 신랑 신부는 두 손을 꼬옥 잡고 보금자리를 찾아 머나먼 곳으로 떠났다. 이왕지사 축복을 비는 내 마음도 민들레 홀씨가 새로운 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싹트고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결혼은 일생을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만났을 때가 적령기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아들이 이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나 장가갈 줄 어이 알았겠는가.

 

부모 눈에 아직 아들은 마냥 어리기만 하다. 가장으로 남편으로 책임을 스스로 다하겠다는 아들이 벌써 다 컸는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뿐인가, 독립된 울타리로 떠나갔으니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스며들었다.

 

아들은 배가 가끔 아프다고 전해왔다. 결혼 3년 차에 대수술 일정을 알려왔다. 며늘아이는 첫 아이 만삭이다. 나는 상담사로 인생 2막 커리어를 재창조하는 대학원 입학식 날을 고대하고 있던 차였다. 출국하면 수업 일수가 모자라 유급이 된다니 납입한 학비를 반납 청구하고 깨끗이 포기했다.

 

“평생 공부 시대에 내 인생 공부랑 인연이 아닌가 봐.” 나의 열망을 우산 접듯 다시 접었다.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며늘아이가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아이고, 깜짝이야!” 혼자 움찔하며 침을 몰래 꼴깍 삼켰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 재우고 밤 10시에 온라인으로 기도회를 해요.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중보 기도자와 같이하기로 했어요. 저는 ‘시어머니’라고 했더니 모두 부러워했어요. 승낙하시는거죠?”

두 팔 벌려 ‘환대’하며 나를 확 껴안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기쁨이 온몸에 전율 되었다. 말 한마디일 뿐인데… 나는 그녀에게 ‘어른’이었고, 자신의 삶에 동행인인 어른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그 한마디는 신뢰와 진정성 있는 진심으로 다가와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아닌 결이 같은 사람의 대화였다. 가족의 이름으로 맞이한 그녀는 이제 피보다 진한 마음으로 영적인 어머니로 나를 존중하였던 거다.

관계는 완성이 아닌 진행형이다, 과정 속에 서로에게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너, 내 딸 맞아. 난 그저 네가 우리 집에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

 

이런 이유가 하루아침에 온 것일까? 언젠가 며늘아이가 교회 부부 수련회에 갔는데 아들, 곧 남편이 눈물콧물에 혼신의 힘으로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그 희생을 목놓아 흐느꼈노라고. 아들의 눈물보다 더 진한 이야기를 나에게 슬며시 전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내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이다. 아들은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살아가노라면 정말 어려운 관계가 있다. 가까우면서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과의 관계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려 노력했다. 나에게서 너를 보고, 너에게서 나를 비취는 반사경이 된다. 가끔 오목렌즈로 모자라는 햇살을 힘껏 끌어다 준다.

 

유전자로 태어나면서 얻는 인연이 가족이라면, 선택하고 가꾸는 관계는 고부간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자부의 사랑은 잔잔히 싹트고 자라서 오늘 같은 봄날, 꽃피우고 또 진다.

 

비어낸 자리에는 대추 하나. 복숭아 한 개가 자리할 테지.

 

“진정한 환대란 상대를 내 방식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식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

 

 


 

 

홍헬렌송귀 작가

 

마음공감 코칭 & 심리상담센터장
학력 : 칼빈대학교대학원(심리상담치료학,상담학석사)
경력 : 현)한국푸드표현예술치료협회 이사 /분당노인종합복지관 상담사/ 용인시 교육지원청 학생삼담
저서(공저) : [자존감요리편 10인10색마음요리2] [시니어강사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Copyright @대한민국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