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 등록 2025.05.27 16: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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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마다 생각나는 나의 외할머니


오랜만입니다. 종일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어야만 했던 날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마냥 좋은 날은 아닙니다.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죠. 반갑지 않은 그 손님은 바로 몸살감기입니다. 밤사이 온몸이 쿡쿡 쑤시기 시작하더니 아침부터는 오한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가 속은 울렁거리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늦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내 몸도 열이 올랐다 내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잠옷은 온통 땀 범벅으로 꿉꿉해졌습니다. 몸이 쉬라고 애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내 몸아. 오늘은 푹 쉬자.”

 

미리 정해진 약속들이 있었기에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일정을 미루기 위해 전화합니다. 전화를 끊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몸을 위해서 잘했다고 애써 위로해 봅니다. 워낙에 급한 일부터 해치우는 성격으로 오랫동안 몸을 부려 왔으니 탈이 날 만도 합니다.

 

이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웬만해서는 정해진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몸이 갑자기 아픈 날이 잦아지니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몸을 생각해서 함부로 약속이나 일정을 잡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늙어가는 몸을 배려하면서 함께 정해야 하는데, 여전히 철없는 마음은 자꾸만 이런 현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어렸을 때 나의 멘토였던 외할머니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급한 일일수록 차분히 생각하면서 조금 먼 길로 돌아서 가거라.”

”그래도 자꾸 마음이 급해지거들랑 웃으면서 뒷걸음으로 명랑하게 가라”

 

그땐, 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추운 겨울에 머리를 감으려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덜어 와서 써야만 했습니다. 빨간 고무 양동이에 펄펄 끓는 물을 덜어서 종아리까지 높은 부엌 문턱을 넘는다는 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외할머님은 늦둥이 막내 손자의 머리를 감겨주시려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셨습니다. 할머니는 위험하다면서 뜨거운 물 나르는 걸 손도 못 대게 하셨습니다. 직접 퍼 나른 뜨거운 물에 수돗물을 섞어 머리를 감기에 딱 좋을 만큼 따뜻한 물을 대야에 가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린 손주의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고 발까지 닦아 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참 좋아 보였습니다.

 

나는 수건을 들고 있다가 외사촌 동생의 머리며 얼굴, 그리고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새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상쾌한 기분에 통통 뛰는 동생의 웃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수돗가에 계신 할머니가 궁금해 돌아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고 계신 할머니가 너무 춥고 위험해 보였거든요.

 

나는 가마솥에 뜨거운 물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한 양동이 정도 물이 남아 있길래 서둘러 물을 가져다드리려다 그만 부엌 문턱에 걸려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는 수돗가 고무통에 있던 차가운 물을 다리에 마구 퍼붓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뜨거워라. 머리는 춥고 다리는 뜨겁고, 아이고”

 

넘어지면서 쏟아진 물이 할머니의 다리로 쏟아져 화상을 입은 것이었습니다.

 

“할미 추울까 봐 그랬으니 화낼 수도 없네, 껄껄껄 아이고 우스워라,”

 

할머니는 참 이상했습니다. 두 손을 싹싹 빌며 연신 ‘할머니 죄송해요’라고 하는 내게 오히려, 껄껄껄 웃으며 농담을 하시니 말입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물에 덴 다리가 다 나으실 때까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 할머니 죄송해요. 많이 아프시죠?”라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는 “ 네 덕분에 나도 쉰다. 핑계로 밭일도 안 하고 좋지 뭐. 껄껄껄.”라며 대답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웃으면서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내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할머니에 대한 사랑에 감동한 어린 손녀의 존경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여전히 나의 외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분이십니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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