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06.19 02: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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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의 다른 이름은 일상이다


특별한 날은 인생을 바꾸지만, 평범한 날은 인생을 지탱한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상태’를 떠올린다. 위기를 기회로, 상처를 성숙으로, 무너짐을 비약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실제 삶에서의 회복은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으며, 때로는 너무 평범해서 대단하지 않게 보이기까지 한다. 병을 앓고 난 뒤의 완치는 통증 없는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고,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의 회복은 단지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약속한 시간에 어딘가에 도착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위로라는 말이 무력하게 느껴질 만큼 지쳐 있던 날들 속에서도, 그날을 그냥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견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회복력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심리학을 넘어 교육, 경영, 심지어 자기계발서 속에서도 흔히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어떤 실패에도 꺾이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다시 일어나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나아지라고. 하지만 그 회복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너무 낙관적으로 소비되는 느낌도 든다. 마치 우리는 반드시 어떤 상실을 발판 삼아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나아가 그 경험을 멋지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받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아픔은 그냥 아픔으로 남고, 어떤 상처는 아무 말 없이 아물고, 어떤 이별은 설명 없이 끝나기도 한다. 그런 시간에도 우리는 어쩌면 단지 다시 걷고, 다시 웃고, 다시 먹고, 다시 자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회복의 본질은 복귀에 있다. 이전과 같지는 않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다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텅 빈 집에 불을 켜고, 다시 라면을 끓이고, 뉴스에 눈을 돌리는 그 모든 순간들. 거창한 계기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반복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삶이 극적인 반전을 주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평범한 하루하루를 다시 통과할 수 있는가다. 그래서 진짜 회복은 대부분 말보다 앞서 삶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어제와 같은 일을 오늘도 해냈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나는 오래전 큰 상실을 겪은 친구를 떠올린다.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별다른 상담을 받지도 않았다. 다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고, 그가 밥을 세 숟갈 연달아 뜨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회복의 징후. 그건 다시 ‘밥을 먹는 사람’이 된다는 것, 다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는 것, 다시 ‘작은 불편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회복은 성격이 바뀌거나 인생이 달라지는 일이 아니다. 단지 원래의 일상성을 조금씩 다시 찾아가는 일이다.

 

일상을 되찾는다는 말은 단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루틴 안에 감정의 리듬이 섞여야 하고, 때로는 무표정하게 지나갔던 순간들에도 작은 온도를 부여하는 일이다. 회복은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무너진 뒤에도 삶의 감각을 되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어제 먹던 커피의 향이 오늘 다시 익숙하게 느껴지고, 낯설던 계절의 공기가 어느새 예전처럼 가깝게 와닿는 감각. 회복은 그런 감각이 돌아오는 지점에 있다. 시간은 정직하다. 때로는 고통을 밀어내기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내는 법을 우리 몸에 조금씩 익히게 한다. 그리고 그 익숙해짐이 바로 회복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경제지에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회복에 대한 시선을 한층 더 구조적인 곳까지 끌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사회 전체가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 기업이 실패했다가 재정비하는 일, 도시가 재난을 겪고 재생되는 일처럼. 그러나 그 모든 구조의 단위도 결국은 개개인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하루를 다시 살아내는 개별의 생명들.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그 어느 조직도 다시 서지 못한다. 회복은 늘 작고 사적인 곳에서부터 자란다. 우리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거창한 말 대신, 단지 ‘살아내고 있다’는 고백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회복을 말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새벽에 문을 열고 나가는 이른 출근길의 사람들, 점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식당을 채우는 사람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조용히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말없이 하루를 통과하고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무너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의 오늘이 어제와 같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회복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회복력의 다른 이름은 특별함이 아니라, 바로 그 반복이다. 우리가 자꾸만 지나쳐버리는 지극히 평범한 오늘. 그 안에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있다. 회복은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만한 업적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의 완주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그냥 보냈다’는 당신의 말은, 이미 충분한 회복의 기록이다.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강인하게 살아낸 이 하루를 나는 응원하고 싶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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