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07.09 0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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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는 은밀하게 다가온다.


무례는 늘 은밀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향한 노골적인 비난이나 공격은 오히려 그 자체로 경계가 된다. 우리는 명백한 무례에는 반응하고, 때로는 대처하며, 적어도 불쾌함을 자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무례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직접적으로 불쾌한 말을 던지기보다는, 무심하게 말하고, 농담처럼 감정을 건드리고, 애매하게 책임을 회피한다. 그 말은 꼭 그렇게까지 들을 필요 없지 않냐는 태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는 말, 그리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권유. 그것들은 하나같이 대놓고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더 피곤하다. 무례함을 느낀 사람이 오히려 민감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짜 무례는 의도를 숨긴 채 정당성을 갖춘 얼굴을 하고 온다. 회의 중 누군가의 말을 끊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는 상사, 부탁을 위해 늦은 시간에 연락해놓고 ‘바빠서 그랬다’며 핑계를 던지는 동료, 분명한 상처를 남긴 말에도 ‘그럴 뜻은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 말들엔 공통점이 있다.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만, 들은 사람은 설명할 길 없는 불쾌감을 오래 끌고 간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실수라 넘기고, 누군가는 농담이라 웃지만, 듣는 이는 농담이 끝난 뒤에도 계속 그것을 곱씹는다.

 

무례함이 감춰진 채 전달될수록, 그 감정은 오히려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왜 불쾌한지도 설명하기 어렵고, 누구에게 말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감정. 그래서 무례한 말을 들은 사람이 오히려 상황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맞추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 반복된다. 말은 사라졌는데 감정은 남아 있고, 그것이 해소되지 않은 채 반복될 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점점 더 무뎌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뎌짐은 다시 새로운 무례를 낳는다. 내가 받았던 무례가 해소되지 않은 채 쌓이면, 어느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무심한 말, 핑계 섞인 웃음, 농담 같은 공격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무례는 그렇게 전염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늘, ‘그럴 뜻은 아니었다’는 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다. 말은 그 사람의 뜻이 아니라 태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민감해져야 한다. 예민하다는 말에 스스로를 검열하기보다, 내가 받은 감정에 정직해지는 쪽으로. 그리고 동시에, 내가 전하는 말이 어떤 태도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자주 점검해야 한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결. 그 결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신중한 말, 더 책임 있는 표현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무례는 어느 순간 번쩍이며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은근히, 그러나 반복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받은 감정이 사소해 보이더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심코 흘린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게 잔상처럼 남을 수 있다는 것. 결국 관계를 망치는 건 큰 사건이 아니라, 작지만 반복된 무례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자. 내 말은 정말 내 의도만큼만 전달되고 있는지, 나의 무심함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상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작은 자각이 무례를 멈추는 첫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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