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 등록 2025.11.12 00: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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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타러 걸어갑니다. 까슬한 가을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못 보던 작은 포장마차가 보입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를 유혹하고 김은 모락모락 흘러나옵니다. 슬쩍 들여다보니 잉어빵과 번데기가 사이좋게 놓여있습니다. 번데기는 재래시장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시내에서 파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또 한쪽에는 옥수수로 만든 술빵이 비닐에 덮여있습니다. 옅은 노란색에 콩이 듬성듬성 박히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옥수수빵입니다. 이 빵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간식입니다.

 

갑자기 마주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작년 말,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친정을 자주 찾았던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요? 친정에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옥수수빵을 사는 겁니다. 아버지가 드시기 편하도록 깍둑썰기를 해서 일부는 실온에 두어 편하게 드시게 하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드시는 것은 아니지만 간식으로, 때로는 식사 대신 드시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40년 단골 이발소’를 찾는 일입니다. 저 혼자 걸어가면 3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차로 모시고 가면 쉬울지 모르겠지만 운동 삼아 아버지를 모시고 다정히 걸어갑니다. 점점 야위어가는 아버지 손을 잡고 걷는 그 길, 10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저희 부녀에겐 더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황반변성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 가고, 노환으로 인해 근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잘 걷지 못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습니다. 이발사님은 70대 후반이시고, 면도해 주시는 아주머님은 60대 중반이라 합니다. 그곳에 오시는 손님들도 모두 비슷한 연배입니다. 묵직하게 자리한 의자조차 오랜 세월을 지켜온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맞이한 듯합니다. 처음 아버지와 함께 갔을 때 저를 낯설게 바라보던 어색한 시선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면도와 이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근처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십니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새벽에 깨서 “누가 왔다 갔나?”라고 저에게 묻고는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요?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아버지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생각조차 못 했던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앞둔 한 달 전, 저는 큰아이와 함께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밤늦게 도착하니 그냥 주무시라고 했는데,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반달이지만 유난히 밝았고, 별도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유쾌한 분이셨습니다. 아주 오래전 있었던 추억들도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엄마는 늘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타박했지만 전 깔깔대며 웃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2주 전과는 다르게 그 유쾌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더운 방에서 춥다며 겨울 점퍼를 걸치고 계셨습니다. 마침 그날 겨울 패딩과 경량패딩 조끼를 사가지고 왔던 터였습니다. 새 옷을 입혀드렸더니 금방 따뜻하다고 하시니 마음이 추웠던 걸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날 새 옷을 입고 이발소로 모시고 갔던 일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입니다. 그날로부터 한 달 후, 저희와 영원한 이별을 했으니까요.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에게 미안했던 일들만 자꾸 떠 오릅니다. 출근 준비하다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영안실로 옮긴 후라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환자처럼 아버지를 생각했더라면 그 미묘한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을 텐데 하는 뒤늦은 죄책감마저...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네요.

 

그리운 나의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계시는 강릉으로 달려가 아직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산소에 엎드려 이 글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

 

아버지와의 인연의 끈도 서서히 놓아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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