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여행
생애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계획을 세웠다. 목적지는 제주도다. 지난 일 년 동안 끝없이 계획하고 포기하기를 수십 번 했지만, 이번만큼은 계획이 아닌 실행이어야 했다. 되도록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제주로 향했다. 지금 이글을 제주도에서 쓰고 있으니 나 홀로 여행에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지인을 통해 조용한 시골 마을인 한경면 신창리에 아담한 단독 펜션을 빌렸다. 주변에 쌍둥이 같은 건물이 두 채 있지만, 아무도 없는지 조용하고 불빛조차 없다. 꿈만 같은 이 시간, 고요하고 적막해서 무서운 기분까지 든다. 이 낯선 느낌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시장을 다녀온다며 집 나선 엄마를 기다리다가 불현듯,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울컥했던 때의 기분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섯 살 무렵, 첫 손녀였던 나를 늘 무릎에 앉혀놓고 막내딸처럼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의 기묘했던 그때의 느낌, 어느 날 갑자기 병풍 뒤에 누워있는 외할아버지를 부여잡고 엄마와 이모들이 왜 그렇게 울고, 불고, 오열하는지, 죽음이란 걸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기억 속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남아있다. 어금니 안쪽에 고인 날 것의 비릿한 침 냄새에 놀라 순간 흠칫하여,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주 오랜만에 엄마도 아내도 친구도 아닌 오직 나로서 느껴보는 느낌이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곳에서의 며칠간의 여행, 이런 생각들이 방안 차가운 공기를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하필 내려오는 날부터 올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로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그래도 남쪽이라 따뜻할 줄 알았던 제주도 역시 전에 없던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점심때쯤 도착해 오늘까지 계속되는 이 낯선 곳의 날씨는 일 년 치의 계절을 빠르게 보여주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 늦은 밤까지 눈보라가 휘몰아치더니, 새벽에는 세상 조용해 오랜만에 늦은 아침까지 깊은 단잠을 잤다.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니 온 세상이 새하얗게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었다. 잠을 깨자마자 또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는 마음속 근심 걱정들을 창밖으로 내 던지고 문을 얼른 닫았다. TV를 틀자 리포터들이 저마다 입김을 뿜으며 육지의 한파 소식을 특보로 전하고 있다. 잠시 내 주변 세상을 잊으려 멀리 왔는데 뉴스를 듣는다는 건 모처럼 용기 내어 온 홀로 여행의 목적을 흐린다는 생각에 얼른 TV를 껐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나만의 음악을 틀었다.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는 하얀 연기와 함께 온 집 안을 가득 채워 아주 잠깐 쓸쓸할 뻔했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커다란 머그 컵에 가득 커피를 담아 노트북을 올려놓은 탁자 앞에 앉았다. 지금은 이곳에서의 일 년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 계획하고 혼자 결정하려 한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내가 내 삶을 꾸려가야 하므로 이전과는 다르게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계획과 선택을 해야 한다. 사실 막막하고 두렵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보려 나를 다독이고 있다.
▲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