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헬렌송귀의 마음요리

  • 등록 2025.01.31 2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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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마다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파리 고택의 우편함에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넣은 작가가 있다. 그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박희성 작가이자 건축가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고택들을 골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인터뷰했다. 건축가로서 집 구조와 디자인 등 건축물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있는 추억담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만일 당신의 우편함에서 이런 편지를 발견한다면 과연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뉴욕의 가파른 계단 상가 이층집. 70년 된 기찻길 옆 집이 떠올랐다.

 

고등학생이 될 아들을 위해 학군 좋은 부동산을 들렀다. 나온 것이 없단다. 1년 후 오란다. 1년 후에도 없다는 대답에 앞이 캄캄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어 1년 전에 의뢰했고, 이 동네 지인의 추천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그제서야 전화번호 달랑 적어놓고 가란다.

 

미국에서는 이민자가 원하는 학군을 찾아 집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일명 좋은 학군에는 아무나 오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부동산에서부터 고객 정보가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이다.

뜨내기에 불과한 나는 우여곡절 끝에 기다리던 집을 얻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목적에 맞게 찾은 집의 환경은 주변의 좋은 집들과는 상이하게 달랐지만, 그저 감지덕지했고, 1년을 기다려 얻은 자부심에 사소한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끔 새까만 눈알 두 개가 소파 귀퉁이에서 반짝이며 마주칠 때는 섬뜩한 소름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안도하며 지낼 수 있었다.

 

이사 한 집 창문 너머, 새벽 5시부터 맨해튼으로 출근하러 기차역으로 향하는 직장인의 따닥따닥 발걸음 소리가 아침잠을 깨웠다. 어쩌면 그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좋게 여겨 경쾌하게 들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반대편 창문에는 아래층 일식집의 팬이 수시로 돌아가고 바람 방향에 따라 가끔 냄새가 나지만 창문을 열지 않으면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응하면 평온함이 계속될 줄 알았으나 반년쯤 지난여름 어느 날부터 견디지 못할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지린내와 비 비린내가 뒤범벅된 이상한 냄새로 나의 뇌는 에너지 바닥으로 괴로움에 시달렸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것일까? 소파 모퉁이에 살포시 내밀던 그 새까만 눈동자를 주시한다. 가끔 놀러와 쫓아내려 손사래를 하면 온열 라지애타 구멍으로 다이빙하듯이 낙하한다. 집 외부의 팔뚝만 한 뉴욕 쥐와는 달리 내 엄지손가락만 한 것이 내 건강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끔찍했다.

 

 

생쥐들의 초토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출입로를 차단하려 플라스틱을 잘라 모든 구멍을 메꾸고, 페트병에 쇠 수세미를 넣은 괴롭힘 작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온열 라디에이터 구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놈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역 환경국에 의뢰해서 쥐 소탕 작전. 알약을 먹은 쥐는 죽어 나가고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후 딸 아이가 침대에 눕기만 하면 이상한 냄새에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침대를 옮기자 쥐꼬리만 한 털들이 축 늘어진 물체에서 허물 거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직전이었다. 아뿔싸! 이젠 약도 놓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고민의 고랑은 더 깊어갔다.

 

며칠 보이지 않던 검은 눈동자가 소파 끝자락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맹세를 하고 선언했다.

 

”내가 너의 생명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 너도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다오! 페스트 같은 질병, 이런 거 어림없다. 알았지?“

 

그날 이후 나의 몸 상태는 좋아졌고 쥐 박멸에 대한 모든 것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다. 기적처럼 믿을 수 없이 생쥐가 사라졌다! 미키마우스, 디즈니랜드로 갔을까?

 

잠시 생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공간이 집이다. 때론 침입자, 미물도 그 공간에서 비비며 산다. 집은 그곳에 잠시 머무른 사람들의 삶에 기억들이 살아있는 추억의 장소이다.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어 당대에 풀지 못한 것들도 고택처럼 남기며 수리하면서 오랜 세월 이겨낸다.

 

고향집이 그리운 설 명절, 집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추억을 담는 그릇이다.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홍헬렌송귀 작가

 

마음공감 코칭 & 심리상담센터장
학력 : 칼빈대학교대학원(심리상담치료학,상담학석사)
경력 : 현)한국푸드표현예술치료협회 이사 /분당노인종합복지관 상담사/ 용인시 교육지원청 학생삼담
저서(공저) : [자존감요리편 10인10색마음요리2] [시니어강사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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