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 등록 2025.02.18 01: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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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본다. 글을 쓰면 괴로움과 대면하게 된다. 걱정과 괴로움은 두려워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법, 용기를 내 맞서야 한다. 괴로움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왜 무서운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면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야 한다. 무서워도 눈을 피하거나 도망치면 안 된다. 힘들게 마음먹은 용기를 다시 내기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내면 깊은 곳에 자꾸 숨으려 하는 두려움을 달래고 어르며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인 것 같다.

 

처음 그런 글을 썼던 날이 기억난다. 1970년대 후반,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새집은 강북 미아동의, 작은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고 삼 남매 중에 첫째였던 나는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시골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좋았는데 서울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은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려 해도 ’촌닭’이라며 따돌리고 놀려대서 점점 학교에 가는 게 싫어졌다. 엄마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싶었지만, 맞벌이라 바쁘셨던 엄마는 늘 밤늦게 돌아오셨다.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점점 말수가 줄었고, 생각만 하는 우울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엄마의 사촌 오빠가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와 한 살 아래인 여동생이 있었다. 방이 많이 딸린 커다란 부잣집에 할머니랑 다섯 식구의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는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나는 날마다 그 집에 놀러 갔고, 아주머니는 자매처럼 잘 지내라며 무척 예뻐해 주셨다. 아주머니의 손길에 그 집은 항상 깔끔했고, 맛있는 간식과 여러 가지 요리까지 척척 해내시는 살림꾼이었다.

 

동생의 방엔 책상도 있고 커다란 책꽂이도 있었다. 그 책꽂이엔 ‘세계명작동화’, ‘한국전래동화’ 등, 여러 종류의 책이 많았다. 나는 그 집에서 책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동생도 내가 동화책 읽어주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인형 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다 보면 아주머니께서 맛있는 간식을 챙겨 주셨다. 가끔, 동생이 더 놀다 가라고 졸라서 해 질 때까지 있는 날이면 저녁 먹고 가라며 늘 살뜰하게 챙겨 주셨다. 그 집에 노는 동안엔 정말 행복했다.

 

우리는 자주 마론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동생은 나에게 항상 팔이 부러진 인형을 주고 자기는 새로 산 인형을 차지했다. 인형 옷을 갈아입힐 때도 내게는 찢어지고 낡은 옷을 주고 자기는 새 옷을 독차지했다. 한 번씩 바꿔 가며 놀자고 타일렀는데 동생은 번번이 약속을 어겼고, 고집을 부리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양보만 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동생을 혼내고 새 인형을 뺏었다. 그러자 동생은 떼를 쓰며 크게 울었다. 놀라서 달려오신 할머니와 아주머니께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렇게 친절하시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내 얘기를 다 듣지도 않으셨다.

 

무조건 언니는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면서 나를 나무랐다. 그 집에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너무 속상하고 억울했다. ‘만약 이 자리에 엄마가 있었다면 내 편을 들어 줬을 텐데......,“ 불공평한 어른들이 야속하고 더욱 서러웠다. 나는 참고 참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다시는 너랑 안 놀아” 소리치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안 풀린 나는 글을 쓰며 마음속에 끓고 있는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기장 세 장을 가득 채울 만큼 길고 긴 글이었다. 나는 어느새 잠들었고, 늦게 들어온 엄마는 눈물 젖은 일기장을 보셨는지 다음 날 아침, 밥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계란말이가 있었다.

 

엄마는 다 먹은 밥그릇을 입에 대고 “하하하하하하하” 크게 웃으셨다. 그리고 밥그릇 뚜껑을 닫으셨다. 그리고 “엄마처럼 해 봐”라고 하셨다. 엄마를 따라 밥그릇을 입에 대고 “하하하하하” 크게 웃고는 뚜껑을 얼른 닫았다. 엄마는 밥뚜껑을 살짝 열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웃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밥뚜껑을 살짝 열 때마다 크게 웃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자 동생들도 같이 밥뚜껑을 열고 닫으며 웃어댔다. 어느새 아침 밥상 위에 피어난 웃음꽃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만의 밥뚜껑 행복놀이가 시작되었다. 그 후 우리는 힘들 때나 울고 싶을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엄마표 밥뚜껑 놀이‘로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엄마의 재치로 슬픔이 사라지던 날, 그날 역시도 나는 일기를 썼다. 처음 느껴보는 엄마의 속 깊은 사랑을 기억 저편으로 잊게 될까 봐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가끔내 일기를 몰래 보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조금씩 우울한 세상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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