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힘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우리가 웃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젖혀 창문을 열고, 크게 한숨을 쉰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창밖 풍경을 감상한다.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를 바라보니 오늘의 일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1) '음양탕' 한 잔을 마시고 ‘유튜브’에서 ‘모닝 재즈’를 찾아 들으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팔다리를 길게 뻗어 좌우로 흔들어 주면 밤사이 뻣뻣해진 몸이 부드럽게 풀린다. 또, 목을 앞뒤로 끄덕이다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려준다. 서서히 몸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지면 웃기 시작한다. 2) ‘마음 스트레칭’이다. 처음 시작할 땐 잠깐 웃는 것도 무척 어색했는데, 일주일쯤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3분 이상은 거뜬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쉽고, 답답한 마음이 후련해져서 좋다.
‘마음 스트레칭’을 시작한 이유는, 얼마 전부터 찾아온 우울감을 스스로 극복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갱년기와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며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면역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잠시 집 나간 의욕 때문에 점점 더 우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드는 온갖 걱정으로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냥 한번 크게 웃어보았다. 그러자 부정적인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껴졌다. 잠시 복잡한 마음에 찾아온 평온함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웃은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아주 상쾌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웃음의 힘’을 실감했었던 계기가 있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함께했던 때이다. 결혼하자마자 한 참 깨를 볶아야 할 신혼 시절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일하는 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로 병원에 왔고, 그 사실을 들은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중환자실에서 힘없이 허공을 휘젓는 아버지의 눈동자는 나를 알아보시는 건지, 못 알아보시는 건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겼고, 나는 만사 제쳐두고 당신 곁에 있기로 했다. 우리의 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뭐라고 말은 하시는데, 처음 듣는 외계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신이 답답해서 글을 써가며 이야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글씨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며칠 지내고 나니, 같은 병실의 환자와 가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의 싸우는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거나 몰래 웃어대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꾀를 내어 알아듣는 척하느라 아무거나 가져다드리고, 뭐든 해드리기 시작했다. “아하! 어깨 주물러 달라고요? ”, “ 네. 아빠. 머리 빗겨 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시원한 물 가져올게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거나, 아이처럼 징징거리다가 토라지기도 하셨다. 그런 우리 부녀의 모습은 마치 두 바보가 싸우는 코미디 콩트처럼 보였는지 6인실이었던 병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와 내가 있던 병실은 시한부 환자들이 잠시 머무는 병실이었다. 때문에, 환자 곁에 머무는 가족이나 병문안 오는 친지들의 분위기는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부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병실에 머무는 환자와 가족들을 웃게 하는 한편의 ‘일일 시트콤’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지독한 변비에 걸렸다. 며칠 동안 배를 움켜잡고 힘들어하시길래 약을 처방받아 드렸는데도 너무 오래 변을 보지 못해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다.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실 때, 억지로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3) 나의 변비 해결 방법이었던 ‘엉덩이를 따듯한 물로 샤워하는 법’을 시도했다. 아버지는 당황하셨고, 날 화장실 밖으로 밀어내셨지만 나는 밀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끝까지 버텨냈다. 그러기를 수십 번, 아버지는 내게 졌다는 듯, 배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30분 정도 후에 드디어 배변에 성공하셨다. 나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잠깐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 순간 병실 사람들 모두가 “똥 나왔어?”라고 합창하듯 물어보았다. 나는 냄새도 뺄 겸 화장실 문을 한 번 더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엄청 많이 싸셨어요.“ 화장실 밖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아버지는 부끄러우셨는지 얼굴이 새빨개지셨다. 그 후 까칠했던 아버지는 웃기 시작했고, 사람들과도 친해지셨다. 그렇게 약 2달 동안의 병원 생활을 마친 후, 아버지는 신혼집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내셨다.
그 후, 몇 달을 못 버티고 하늘로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그립다. 함께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아버지의 무뚝뚝한 표정과 투박한 손길에도 사랑과 정이 묻어있음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무엇보다도 아픈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웃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음의 힘’을 확신하며 오늘도 ‘마음 스트레칭’으로 상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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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음양탕 (陰 陽 湯): 뜨거운 물에 차가운 물을 부어 섞은 물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
본초강목에 따르면 맛은 짜지만, 독이 없다고 하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대류현상 덕분에 신진대사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2) 마음 스트레칭 : 의도된 웃음을 10초 이상 지속하는 웃음 치료 중 하나이다. ‘미소 짓기’를 몇 번 반복하거나, 큰소리로 10초 이상 웃는 등. 반복해서 여러 번 할수록 효과가 좋다.
3) 나의 변비 해결 법 : 배변시 샤워기 물의 온도 약 40도~45도 정도로 따끈하게 맞추고 30분 정도 엉덩이를 샤워하면 괄약근이 이완되고 항문 주변의 혈액순환이 좋아져 변비에 효과가 있다.
▲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