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 등록 2025.04.16 16: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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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

–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착각에 대하여


사람은 참 쉽게 안다고 말한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몇 번의 행동을 지켜본 뒤 우리는 상대를 ‘이해했다’고 단정지어버린다. 더구나 그가 내 곁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라면, 그 판단은 더욱 확고해진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마음을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쟤는 원래 그래.’ ‘그런 말 할 줄 알았어.’ ‘지금쯤이면 이런 기분일 거야.’ 그렇게 익숙함은 점점 판단이 되고, 그 판단은 결국 단정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관계는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단정은 대화의 문을 닫는다. 관계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납작하게 만든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해가 쌓이고,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은 마침내 침묵으로 굳는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믿었던 그 마음은 사실 다 알지 못했던 마음이었고,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외로웠으며, 외로움은 결국 분노나 무관심이라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렇게 가까웠던 사이일수록 더 깊은 오해와 거리감을 경험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또한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 모든 착각의 시작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기분은 매일 바뀌고, 삶의 조건은 시시각각 달라지며,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하는 감정의 결들이 생겨난다. 아침과 저녁의 생각이 다르고,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이 어젯밤엔 눈물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를 두고, ‘나는 너를 알아’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우리는 자주 잊는다. 오래된 인연일수록 오히려 더 묻고, 더 들어야 한다. 잘 안다고 믿는 순간, 그 사람의 복잡함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말하곤 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스타일이야.’ ‘그런 말 하면 싫어할걸.’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을 거야.’ 그 말들 안에는 상대를 향한 배려가 아니라, 더 알고 싶지 않다는 나의 태만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태만이 쌓였을 때, 관계는 무너졌다. 설명할 수 없는 어긋남,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이전엔 없던 벽 같은 것이 생겼다. 가까운 사람이 멀어지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의 ‘무관심한 확신’이 켜켜이 쌓인 끝에 오는 결과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소한 일에도 묻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다시 확인하며, 설명이 필요한 순간엔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것이 때로는 수많은 말보다 깊은 신뢰를 만든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정짓고 있던 말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예측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침묵할 수 있어야 하며,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려는 자세만은 버리지 않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자주 실수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너무 적은 것을 궁금해한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 관계들, 여전히 이어져 있는 마음들을 떠올리면 결국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이 ‘닫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다. 그 다짐이 반복될수록, 관계는 생명을 유지한다. 설령 언어가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르더라도, 상대를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되뇐다. 당신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알고 싶습니다. 그 태도가 관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그 의지가 관계를 지켜내는 힘이 된다. 묻는 일, 듣는 일,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 때로는 그저 그렇게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관계는 다시 숨을 쉰다.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고 싶어하는 마음만은 언제든 꺼내놓을 수 있다.

 

지나간 오해를 다시 설명하고, 멀어진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늦지 않았다.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받을 수는 없지만, 다가서려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닿는다. 관계는 그 마음 위에 다시 피어난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뿐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관리자 기자 edulad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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