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따라 걷는 길
길을 걷는데, 코끝에 머무는 향긋한 내음이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하얀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아까시나무를 두리번거리며 찾아봅니다. 하지만 모습을 꼭꼭 숨긴 채, 그저 달콤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입니다. 이렇게 향이 짙은 것을 보면 가까이 있을 거 같은데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길 건너편 성당 담벼락 위로 시선이 머뭅니다.
담장을 따라 초록 잎을 잔뜩 두르고 올라온 덩굴장미가 이른 꽃을 몇 송이 피우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눈부시게 붉고 수줍은 모습이 심장에 가 닿았는지 마음 깊은 곳이 찌릿찌릿해 옵니다. 이렇게 선물처럼 기분 좋은 날, 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바로 봉사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죠.
오늘은 무료급식소 자원봉사가 있는 날입니다. 시작한 지 어느새 3년이 넘었네요. 겨우 스무 살이던 작은아들을 군대 보낸 후 마음이 울적하고 헛헛해서 하게 된 일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훈련소 문 앞에 그냥 떨구고 돌아서던 날이었어요. 멈추지 않는 눈물에 가슴속이 끊임없이 일렁거려, 마음에 무게중심이 되어줄 추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찾게 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은, 이탈리아 신부님이 20년 넘게 노인과 노숙자를 위해 운영하시는 무료급식소입니다. 배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2가지 루틴이 있습니다. 봉사자가 2줄로 마주 보고 서서, 짧은 기도문을 함께 읽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다음에는 봉사자들 모두, 머리 위로 큰 하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급식을 기다리며 줄 서 계신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한목소리로 인사하며 급식소 주변을 한 바퀴 돕니다. 그런 후, 비로소 배식 활동을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 설거지팀입니다. 다른 한 분과 함께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푼 물에 식판과 국그릇을 닦으면, 또 다른 한 분은 그것을 고온세척기에 차곡차곡 집어 넣습니다. 식판과 그릇이 건조되어 나오면 또 다른 분이 마른 행주로 하나하나 닦습니다. 그 모든 과정의 합이 너무 잘 맞아 힘들기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오늘 식판을 터는 분은 대학생 딸과 함께 왔습니다. 아무래도 딸이 처음이라 서툴다 보니 엄마가 무척 바쁩니다. 하지만 함께 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부럽습니다. 설거지 팀에는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도 있습니다. 아들은 식사하러 오신 분들에게 수저를 공손하게 나눠주고 있네요.
삶을 행동으로 가르친다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장강명 작가가 좋은 삶은 ‘좋은 서사와 좋은 일상’이 함께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이 봉사가 저에게 좋은 서사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신부님이 그분들의 입으로 밥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그 마음을 알 거 같아졌습니다. 식판 가득 수북하게 담은 밥을 크게 떠서 드시는 노숙자분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전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계속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겨우 한 달에 한 번뿐인 봉사지만 때때로 그들뿐 아니라 나를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나 봅니다.
아까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담벼락 위 덩굴장미가 심장을 찌릿하게 만들던 그 아침처럼, 봉사는 내 안의 감각을 깨우고 일상을 빛나게 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내미는 손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가득 차오르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충만함입니다. 결국 봉사란, 누군가의 식판을 채워주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서사를 풍요롭게 채워가는 일인 듯 하네요.
그 향기로운 발걸음이 3년 넘도록 나를 이 길로 다시 이끄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