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입맛은 돌아갈 곳을 기억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른다. 현지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었어도 생각나는 것은 대개 화려한 요리가 아니라 오래 먹어온 한 끼다. 홍콩에서 스테이크와 딤섬, 구운 거위까지 낯선 도시의 맛을 부지런히 경험하고 돌아왔지만 비행기가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습관처럼 찾아가는 식당의, 여러 번 먹어 맛을 훤히 알고 있는 바로 그 김치찌개였다.

 

익숙한 식당에 들어서자 메뉴를 오래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냄비 안에서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함께 끓고, 붉은 국물이 보글거리며 올라왔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자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그제야 몸으로 느껴졌다. 특별한 조리법을 발견한 것도, 처음 만나는 맛에 감탄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수없이 먹어온 맛인데도 낯선 곳을 다녀온 뒤 만난 그 익숙함은 새삼스럽게 따뜻했다.

 

이것은 여행지의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맛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재료와 조리법을 만나고, 한 도시가 무엇을 먹으며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는 일은 풍경을 보는 것만큼 흥미롭다. 때로는 한 접시의 음식이 유명한 건축물이나 관광지보다 그곳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한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길에는 낯선 도시에서 만난 훌륭한 음식과 전혀 다른 이유로 익숙한 한 끼를 그리워하게 된다.

 

낯선 맛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해석이 시작된다. 어떤 향신료가 들어갔는지, 왜 이런 질감이 나는지, 현지에서는 어떻게 먹는지 생각하게 된다. 주문할 때마다 메뉴를 읽고 다른 사람의 추천을 살피며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반면 오래 먹어온 음식 앞에서는 애써 이해하거나 판단할 필요가 없다. 입안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는 맛이기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익숙한 음식은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없이 돌아온 사람을 받아주고 흐트러진 감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입맛은 혀에서 그때그때 생겨나는 취향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랜 시간 몸에 쌓인 기억이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는 판단에는 재료와 조리의 완성도뿐 아니라 그것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어왔는지가 함께 들어 있다. 반복해서 먹은 음식에는 평범한 날들의 시간이 겹겹이 스며 있다. 바쁜 날 서둘러 먹은 점심, 늦은 밤 허기를 달래던 국물, 특별한 약속 없이 찾아가던 동네 식당의 한 끼가 쌓여 한 사람의 입맛을 만든다.

 

그래서 돌아온 날 생각나는 음식은 반드시 어린 시절의 집밥일 필요가 없다. 오래 다닌 식당의 찌개일 수도 있고,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나 집에서 끓여 먹던 라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의 격이나 역사보다 그 맛이 자신의 일상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이다. 반복해서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뜻이다. 익숙한 맛은 지난날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자는 곳과 걷는 길이 달라지고, 사용하는 언어와 하루의 속도까지 달라진다. 그 낯섦이 우리를 설레게 하지만 몸은 생각보다 천천히 새로운 리듬에 적응한다.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았다고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익숙한 냄새와 온도, 늘 먹던 음식이 하나씩 돌아와야 몸도 제자리를 찾는다. 여행이 공간을 옮기는 일이라면 돌아옴은 그 이동으로 흔들린 감각을 다시 맞추는 과정이다.

 

익숙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성으로 볼 필요는 없다. 멀리 떠나보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입맛을 발견하기도 한다. 늘 곁에 있을 때는 평범했던 맛이 거리를 두고 난 뒤 선명해진다. 낯선 음식을 경험하는 동안 입맛의 세계는 넓어지고, 돌아와 익숙한 음식을 먹으며 그 넓어진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확인한다. 낯섦과 익숙함은 서로 밀어내는 감각이 아니라 서로의 의미를 밝혀주는 경험이다.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닐 것이다. 김치찌개 한 냄비 안에는 익숙한 거리와 늘 앉던 자리, 주문하지 않아도 아는 맛, 다시 이어질 평범한 하루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돌아온 날의 한 끼는 허기를 채우는 식사를 넘어 자신의 생활로 돌아왔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된다. 그 음식을 먹는 동안 여행지의 시간은 비로소 추억이 되고, 잠시 멈추었던 일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맛은 세계를 넓혀주지만 익숙한 맛은 넓어진 세계 속에서 내가 돌아갈 자리를 알려준다. 여행이 바깥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라면 돌아옴은 그 세계를 보고 온 나의 좌표를 되찾는 일이다. 집의 주소는 지도에 적혀 있지만 마음이 돌아갈 주소는 오래 먹어온 맛 속에 남아 있다. 입맛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기억한다. 그래서 귀환은 집의 문을 여는 순간이 아니라, 오래 그리워한 한 숟가락을 삼키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