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자랑은 차라리 솔직하다

 

나는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을 전혀 싫어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자랑할 수도 있다. 자식이 잘됐으면 말하고 싶고, 어려운 일을 해냈으면 알아주었으면 하고, 좋은 것을 갖게 됐으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친구가 “나 이번에는 좀 자랑해야겠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오히려 편하다. 축하할 일이면 마음껏 축하해주면 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흉한가. 나 역시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자랑이다. 자랑할 것은 빠짐없이 알리면서 자신은 그런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함께 알리고 싶어 하는 경우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는 대화 속에 차곡차곡 들어가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직접 말하지 않고 흘린다. 별것 아니라며 이야기하고, 우연히 나온 이야기처럼 덧붙이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붙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대화가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감추고 싶어 했다는 것들을 거의 다 알게 된다.

 

그래서 은근한 자랑은 대놓고 하는 자랑보다 조금 더 피곤해지는 것 같다. 대놓고 하는 자랑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 잘했지?”라고 하면 “잘했다”고 해주면 된다. 그런데 감춘 자랑은 듣는 사람에게 눈치까지 요구한다. 별것 아니라는 말 속에서 ‘별것’을 발견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꺼낸 이야기에서 그 사람의 대단함을 알아봐야 한다. 게다가 그렇게 대단한 것을 가졌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까지 알아주기를 바란다. 하나를 보여주고 두 개의 인정을 받고 싶은 셈이다. ‘당신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데도 참 겸손하다.’

 

생각해보면 참 묘한 마음이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어한다. 잘났다는 말은 듣고 싶지만 잘난 척한다는 말은 듣기 싫고, 부러움은 받고 싶지만 허영심이 있다는 평가는 피하고 싶다. 그래서 자랑을 감추는 기술이 생긴다. 겸손한 표현을 빌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우연한 정보처럼 자신의 조건을 흘린다. 자랑의 만족은 누리면서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피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대놓고 하는 자랑보다 더 큰 욕심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자랑을 에둘러 하는 방식 자체만은 아니다. 그 안에 사람 사이의 높낮이가 슬쩍 들어오는 순간이다. 자신이 가진 것과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경험을 그보다 조금 위에 올려놓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군가 좋았다고 말하면 자신은 더 좋은 것을 경험했다고 하고, 누군가 어렵게 얻은 것을 이야기하면 자신에게는 그 정도가 그리 특별하지 않았음을 넌지시 알린다. 상대의 기쁨을 축하하는 대신 자신의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 위에 자기 경험을 한 겹 더 얹는다. 말투는 겸손한데 대화가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서열만 또렷하게 남는다.

 

우월감은 반드시 거만한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점잖은 얼굴을 하고 나타날 때가 많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다. “나는 이런 것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이 이미 그것을 충분히 가졌음을 보여줄 수도 있고, “다 사람 사는 게 똑같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살아본 더 넓은 세계를 길게 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겸손한 말과 겸손한 태도는 생각보다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말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타인과 나의 높낮이를 만들지 않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이 가진 것에 편안한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이런 긴 설명이 별로 없다. 많이 알아도 매번 아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좋은 것을 많이 경험했어도 다른 사람의 감탄을 시시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보다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안목을 교정해주려 들지도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와 지금 마주 앉은 사람의 가치를 연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우위를 상대가 알아보지 못해도 별로 초조해하지 않는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정말로 알려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런 데서 오히려 여유를 느낀다.

 

그래서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는 오래된 설명이 이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자신을 실제보다 낮추어 말하면서 상대가 “아니에요, 대단하시잖아요”라고 다시 높여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이 이룬 것을 기쁘게 인정하고 “나 이건 정말 잘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담백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높였느냐 낮췄느냐가 아니라, 그 높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에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물론 남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의 우월감에는 유난히 둔하다. 나는 정보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과시로 들렸을 수 있고,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는 너보다 많이 안다’는 마음이 한 숟갈쯤 들어 있었을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이 잘 알고, 많이 경험하고, 어느 정도 성취한 분야에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자랑할 것이 많아지는 것이야 자연스럽지만, 그것으로 남의 삶을 평가할 이유까지 많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굳이 겸손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자랑하고 싶으면 그냥 자랑하면 된다. 열심히 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기뻐하고, 좋은 일이 생겼다면 떠들고, 친구들에게 축하도 받아라. “오늘은 내 자랑 좀 들어줘”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기꺼이 박수를 쳐줄 수 있다. 그 편이 훨씬 솔직하고 귀엽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 꼭 감출 필요는 없다.

 

다만 자랑하면서 겸손하다는 칭찬까지 가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덜 가진 사람을 배경으로 세울 필요도 없다. 정말 가진 것이 충분하다면 남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가진 것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여유란 바로 그런 데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것.

 

진짜 겸손은 자신이 가진 것을 숨기는 기술이 아니다. 자신이 더 높다는 것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