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산다
새 휴대전화를 샀다. 반듯한 상자를 열고 흠집 하나 없는 화면을 켜는 순간, 생활도 덩달아 새로워질 것 같았다. 사진은 그때그때 정리하고, 연락에는 미루지 않고 답하며, 쓰지 않는 앱은 쌓아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새 기기를 쓰는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고 정돈된 사람일 것만 같았다.
데이터를 옮기고 나니 익숙한 사진과 연락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새 화면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파일도, 한동안 열어보지 않은 앱도 그대로였다. 기계는 바뀌었는데 그 안의 생활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반짝이는 새집으로 오래된 내가 이사해온 셈이었다.
이런 마음은 휴대전화 앞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이번에는 계획대로 살 수 있을 것 같고, 운동화를 사면 꾸준히 걷게 될 것 같다. 책상과 의자를 바꾸면 미뤄둔 공부도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평소와 다른 옷 한 벌을 고르면서 그 옷을 입고 조금 더 자신 있게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한다.
물건을 살 때 우리는 그 기능과 함께 한 장면을 산다. 새 노트에 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 아침마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모습, 좋은 그릇에 끼니를 정갈하게 차려 먹는 모습이다. 계산을 마치는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광고도 그 마음을 잘 안다. 향수를 보여주면서 향보다 분위기를 앞세우고,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이동보다 그 차에서 내릴 사람의 모습을 강조한다. 여행 가방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을 담아 보여준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면서 그 물건과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함께 고른다. 무엇을 갖고 싶은가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가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새것에 설레는 마음을 허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시작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새해 첫날이나 생일, 이사와 이직처럼 이전과 이후를 나눠주는 날에는 미뤄둔 결심을 다시 꺼내게 된다. 그러나 삶에는 그렇게 분명한 출발선이 자주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 하나를 바꾸며 스스로 작은 시작점을 만들기도 한다. 깨끗한 노트의 첫 장과 아직 바닥이 닳지 않은 신발은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다는 기분을 준다.
그 기분이 때로는 시작을 대신하기도 한다. 운동복을 산 날에는 벌써 운동을 시작한 듯하고, 책을 여러 권 주문하면 조금은 읽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새로운 도구를 고르고 준비하는 동안에는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만족감도 생긴다. 준비에는 설렘이 있지만 반복에는 지루함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꾸준히 사용하는 일보다 또 다른 새것을 고르는 쪽으로 기우는 이유다.
변화의 기분은 쉽게 살 수 있지만 변화의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새 다이어리의 첫 장에는 반듯하게 계획을 적지만 며칠 뒤부터 글씨가 흐트러지고 빈칸이 생긴다. 운동화에는 먼지가 묻고,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비슷한 사진과 필요 없는 화면 갈무리가 다시 쌓인다. 새것이 일상이 되는 순간, 물건이 만들어주던 긴장은 사라지고 익숙한 습관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처음 품었던 기대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새 물건 앞에서 상상했던 모습은 자신이 바라는 생활을 의외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새 노트를 산 사람은 기록하는 삶을 원했고, 운동화를 고른 사람은 자신의 몸을 조금 더 돌보고 싶었던 것이다. 좋은 그릇을 마련한 사람은 하루의 식사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건을 향한 욕망 안에는 지금의 삶을 조금 더 잘 다루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새것의 쓸모는 처음의 설렘을 오래 유지하는 데만 있지 않다. 평소에는 흐릿했던 욕망을 잠시 또렷하게 보여준다는 데에도 있다. 막연했던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한 권의 노트와 한 켤레의 신발, 손안의 휴대전화처럼 구체적인 모양을 얻는다. 물건 하나가 사람을 바꾸지는 못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알아보게 할 수는 있다.
그다음부터는 생활이 답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사진을 저절로 정리해주지 않고, 노트는 적어둔 계획을 대신 실행해주지 않는다. 운동화가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까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물건이 건넨 시작의 기분을 하루의 습관으로 옮기는 데에는 결국 지루한 반복이 필요하다.
며칠이 지나면 새 휴대전화도 더는 새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화면에는 지문이 묻고, 알림은 쌓이며, 처음의 결심도 희미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다. 새것이 주던 설렘이 사라진 뒤에도 처음 상상했던 사람의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는가.
우리가 새 물건과 함께 산 것은 완성된 변화가 아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상자를 여는 일은 금세 끝나지만, 그 안에서 상상했던 새로운 나를 꺼내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저서]
상처의 밀도 (2026) -에듀래더글로벌-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