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7화 지역은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가?


그날 회의에서 누군가 물었다. "지방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비자를 발급합니까?" 그는 그걸 말도 안 되는 상상처럼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확신했다. 이 질문 자체가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다. 왜냐하면, 지금껏 지역은 정책의 소비자였다. 중앙이 만든 비자를 받아서, 중앙이 보낸 사람을 받아서, 중앙이 정한 방식으로만 외국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반문한다. 왜 지방이 '사람을 선택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가? 지역은 스스로 계획을 세운다. 도시를 만들고, 예산을 짜고,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한 사업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을 받아들이는 권한은 없다. 이것이 지방자치의 가장 절박한 결핍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모든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비자 중앙집권국가다. 그 어떤 지방정부도, 그 어떤 특구도, 사람 한 명의 입국이나 체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광역비자는 단지 새로운 비자체계가 아니라, 헌법 구조에 도전하는 자치실험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캐나다의 PNP, 호주의 주정부 지명 이민, 일본의 지방 이민 실험을 떠올린다. 이들 국가는 이미 지역이 사람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인구 회복보다 더 깊은 공동체의 복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역비자 제안의 핵심은 이것이다. 지방정부가 추천하고, 중앙정부가 인증하는 '이중 발급 구조' 즉, 지방정부는 지역 실정에 맞는 외국인을 선발하고, 광역비자 추천서를 발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무부가 비자를 최종 허가하는 시스템이다. 이 구조는 기존 중앙집중형 권한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선택권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교한 타협이다. 이 과정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지방정부가 인구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사람을 유치할 권한도 가져야 한다. 그 권한은 행정의 효율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지금 우리는 '지역이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며, 그 이면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방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방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서 다시 시작되는 나라가 된다.

 

나는 상상한다. 경상북도가 광역비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구미가 ICT 인재 유치를 위한 외국인 가족 정착모델을 운영하며, 영천이 고려인 공동체를 위한 주거·교육·노동 통합 전략을 펴고, 봉화가 베트남 이주민을 위한 지역산업 연계 정주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의 첫 문장에 이렇게 쓰여 있다. "본 지역은 이 외국인의 정착을 정식으로 추천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꿈꾸는 "지방이 비자를 설계하는 시대"다. 그것은 법무부의 결재라인이 아니라, 국가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행위다. 국경은 그대로 있지만, 공동체의 시작점은 지방정부가 만든다. 비자 발급은 단순히 서류 하나를 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당신은 여기에 속해도 된다"고 말하는 국가적 선언이다. 그 선언이 이제는 지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추상적인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역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행정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묻는 질문이다. 그것은 권력의 재분배, 결정권의 이양, 자치의 실질화를 요구한다. 광역비자는 그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지방소멸 시대, 인구감소 시대에 '누가 외국인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그 질문을 지방이 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방자치가 시작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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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