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마다 생각나는 나의 외할머니 오랜만입니다. 종일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어야만 했던 날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마냥 좋은 날은 아닙니다.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죠. 반갑지 않은 그 손님은 바로 몸살감기입니다. 밤사이 온몸이 쿡쿡 쑤시기 시작하더니 아침부터는 오한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가 속은 울렁거리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늦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내 몸도 열이 올랐다 내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잠옷은 온통 땀 범벅으로 꿉꿉해졌습니다. 몸이 쉬라고 애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내 몸아. 오늘은 푹 쉬자.” 미리 정해진 약속들이 있었기에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일정을 미루기 위해 전화합니다. 전화를 끊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몸을 위해서 잘했다고 애써 위로해 봅니다. 워낙에 급한 일부터 해치우는 성격으로 오랫동안 몸을 부려 왔으니 탈이 날 만도 합니다. 이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웬만해서는 정해진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몸이 갑자기 아픈 날이 잦아지니 스스로 마음에
중요한건, 여전히 과정이다. 요즘은 누가 “열심히 해요”라고 말하면 괜히 위축된다. 칭찬처럼 들려야 하는 말인데, 듣는 순간 어딘가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지금 충분히 안 하고 있나’, ‘조금 더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예전에는 그 말이 응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숙제가 되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제 목표가 아니라 압박이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결과가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에선 더 그렇다. 아무리 애써도,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애쓴 것조차 지워진다. 그렇게 열심이라는 말은 점점 고립된 감정이 된다. 예전엔 열심히 한다는 말에 자부심이 있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과정 자체가 의미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결과가 모든 것을 정의하고, 과정은 “그러니까 뭐가 됐는데?”라는 말 앞에서 무력해진다. 노력은 입증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열심히 했어요’라는 말은 이제 변명이 되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말은 오히려 게으름처럼 취급된다. 그건 시대가 바뀐 게 아니라, 믿음의 구조가 무너진 결과다. 이제는 누구도 과정만으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한다’는
그저, 하루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어떤 날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마음의 생존 방식이 된다.”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의 이 말은, 아마도 나처럼 말없이 하루를 견디는 이들에게 남겨진 문장일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늘 아침 여러 번 곱씹었다. 커튼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데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손을 뻗어 커피포트를 누르려다 말았고,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오늘 너무 무기력해”라고 말하려다 그마저도 멈췄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개 활력 있는 상태를 ‘정상’으로 간주하고, 무기력은 결함처럼 여긴다. 무언가를 끌어내야 하는 날, 감정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이 찾아오면 우리는 조바심을 느끼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날이야말로 내면이 고요히 신호를 보내는 시간일 수 있다. 감정도 과열되면 탈진하고, 마음도 자주 움직이면 피로해진다. 몸이 신호를 보내듯 마음도 자기만의 피로 언어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언어는 아마도 ‘무기력’일 것이다. 무기력한 하루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도 한때는 그런 날을 ‘하루를 망쳤다’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중에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대를 세 번째 만나는 날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싶지만 가슴이 떨려 오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부르며 달린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제 열 살이 지난 나의 오랜 친구 같은 차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인 양,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오늘처럼 용기를 내느라 16년이나 걸렸다. 더구나 혼자 운전해서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새아버지이긴 해도 엄마 곁엔 항상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항상 내 자식 생각이 먼저였다. 하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당연한 일인 줄 진즉에 알았는데도 너무 오랫동안 미루어 둔 탓인지 용기가 필요했다. 미안함 뒤에 숨어있던 용기를 찾아보았다. 이젠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 그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을까? 엄마는 날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다. 맨날 답답해하고 화만 내던 엄마였는데 요즘은 나만 보면 웃는다. 그 모습이 나는 이리 왜 슬픈지 모르겠다. 외로우신 엄마, 평생 남편 노릇 제대로 못 했던 아빠
-공감- 신뢰 ‘신뢰’의 뜻은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의 관계도 상처가 늘어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의 폭도 줄어드는 듯합니다.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계시나요? 평소에 가장 편안한 사람에게 우리는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상대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해서 자신과의 약속보다 타인과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외 ‘대충’이라는 습성이 있고, 그런 습관이 가까운 사람에게도 드러날 때면, 민낯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시대,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는 제2의 명함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사를 나눌 때도 자신을 소개하기보다 ‘네이버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되는 듯하고, SNS에 나를 소개하는 공간이 없으면 유령, SNS를 활발히 활동하면 ‘나는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버린 요즘, 진정한 내 모습은 실제의 나인가, SNS의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위해 연구하는 일,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매일 자신의 기록을
이름 없는 강인함에 대하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길가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우산은 아이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본인은 젖은 어깨를 굳이 가리지 않았다. 발밑엔 물이 고였고, 그 위를 바퀴는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짙은 표정도, 특별한 몸짓도 없었지만,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종종 그 ‘비 오는 날의 걸음’을 떠올리곤 한다. 아무 말 없이도 어떤 진심은 그렇게 묵묵히 지나간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때론 단순한 일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그것이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때, 세상은 그 수고를 너무 쉽게 ‘당연한 일’로 치환해버린다. 새벽부터 아이를 재우고, 젖병을 씻고, 병원 예약을 확인하고, 장을 보고, 유모차를 밀고 걷는 이 하루의 목록은 어쩌면 아주 단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반복의 고됨과, 말할 수 없는 피로,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혼잣말처럼 따라붙는 “나도 좀 쉬고 싶다”는 그 말. 그런 말조차 내뱉을 틈이 없는 나날 속에서, 어떤 사람은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 비가
오월, 비 내리는 늦은 밤의 추억 이른 아침부터 시원하게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한나절을 넘어가는 정오, 집 근처 개천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연초록의 잎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다 말고 돌아가라고 손사래를 친다. 장난꾸러기 바람의 변덕을 못 본 척,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와 머리카락을 흔들고 얼굴과 귓불을 어루만진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오월의 바람은, 제법 다정하고 살갑다. 달콤한 꽃향기와 풋풋한 풀냄새는 덤이다. 바람 따라 걷다 보니 시선은 어느덧 하늘 끝에 머무른다. 누가 가을하늘의 푸르름이 가장 짙다고 했을까? 반문하고 싶을 만큼 오월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게 짙은 푸르름인데 말이다. 이곳 개천 길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 저장소이다. 사계절을 스무 번도 넘게 보내며 담아둔 대부분은 추억은 아이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이 가장 많다. 가끔 혼자 걸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보고 싶은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던 길. 또,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깔깔거리며 걷기도 했었다. 이별의 아픔을 맞이한 어느 밤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울며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공감- 성장 우리들의 겉모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느새, 40대 중 후반 아줌마의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을 거울을 보며 가만히 마주합니다. 나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가. 내 마음 안에 있는 내면 아이는 성숙한가. 어른과 아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어른들이 아이들 보다 감정조절이 가능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만의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내버려 둔다면 퇴행하여 더 깊은 결핍으로 힘듦을 느끼곤 합니다. 딸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울기만 했던 아이가, 수줍지만 엄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모습, 엄마가 마음 상하지 않게 예쁜 말과 미소로 품에 안겼던 모습, 기분 좋을 때와 속상할 때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이 참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런 성장들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어렵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내면 아이가 느껴지는 대로 힘들면 징징대고, 불안하면 들뜨고, 즐거우면 혼자 신나서 덩실거리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게 될 때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친
폭싹 속았수다, 숨비소리 제주에 유채꽃이 4월 말에도 예쁘게 피었다. 파종을 늦게 한 때문이라니 살면서 이런 행운이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노랑과 연두색의 유채꽃 들판을 가로지르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말을 타고 유유히 걷는다.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 휴식이 있는 선물같은 시간이 된다. 제주 바다는 동해바다에서 느끼는 심오한 깊음과 함께 따뜻한 여성의 숨결로 다가왔다. 바로 해녀박물관을 통해 알게 된 깊은 숨소리, 제주 해녀의 ‘숨비’를 알고 나서이다. ‘숨비’는 해녀들이 ‘물질 후 내뱉는 생존의 숨소리’라고 한다. 그것은 호흡 이상의 숨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인간의 본능적 외침과 세대를 잇는 생존의 소리 같은 것이다. 이처럼 제주 해녀의 숨비 소리는 단순한 호흡만이 아니다. 그들이 깊은 바닷속을 오랜 시간 숨을 참고 물질을 마친 뒤 수면에 올라 내뿜는 거친 숨 가쁨은 현대를 사는 우리네 삶을 향한 의지와 수고에 비교 가능할까? 숨비는 자연과 호흡하며 주고받는 ‘나 여기 살았소!’라 내뱉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호흡이고, 위대한 언어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맨몸으로 잠수하고, 자연의 산물들을 자율 채취하며 조화를 이뤄낸 해녀들이
꽃다발 선물을 오래 간직하려면 연극이 끝나면 마음은 꽃밭이다. 관객들이 전해준 꽃다발로 침대 머리맡을 꾸며놓고, 꽃들이 시들기 전까지 딱 일주일 동안, 내 방도 꽃밭이다. 공연 후의 행복감과 꽃향기에 취해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달콤하고도 몽롱한 시간은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다. 나는 행복한 연극배우다. 어쩌다 보니 마을에서 모집하는 시민연극동아리 <주부연극교실>에 참가하면서부터 활동한 것이 올해 18년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만이라도 무대에서 연극을 해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서게 될 줄은 꿈도 못 꾸었다. 어쩌면 꿈을 이룬 셈이다. 대부분은 소극장에서 올리는 단편 공연들이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내 모습에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게다가 때마다 꼭꼭 찾아와주는 지인들과 팬들의 박수 소리와 꽃다발의 향기는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나만의 행복이다. 처음 몇 년은 함께 공연하는 팀원들도 다 같이 경험도 없이 시작한 아마추어들이었기에 연기도 서툴렀고, 공연하는 내내 우왕좌왕 실수투성이였고,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다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