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주의 행복한 이별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파란 하늘에 봄빛이 가득한 날,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갔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사다 드린 빨간 조끼를 입고 절 맞아주시네요. 허리선을 따라 놓인 꽃무늬 자수가 봄에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저를 보자마자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바쁜데 왜 왔어...?”라고 나무라듯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항상 엄마가 저에게 건네는 첫인사입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말일뿐, 내심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엄마의 얇고 흰 손을 맞잡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건넵니다. “엄마 사랑해.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 말에 엄마가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3주 만에 만난 엄마는 더 작아지고 흐려지는 느낌이라 마음이 먹먹합니다.엄마를 만나면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 동안 별다를 게 없는 동생들의 근황과 손자‧손녀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면회실 통창으로는 환한 봄볕이 들어와 부드럽고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줍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철망으로 된 울타리와 건조대에는 크고 작은 빨래들이 널려 있습니다. 봄바람이 제법 불고 있나 봅니다. 무거워 보이는 매트는 울타리에 위에서 들썩들썩 움직이고, 가벼운 이불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펄럭펄럭 춤을 춥니다. 잠시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엄마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빨래가 기분 좋게 말라가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봅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크고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오늘은 노래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과 할머님들이 함께 부르는 ‘섬마을 선생님’은 애절하기보다 경쾌하게 우리 모녀가 있는 공간 속으로 파고듭니다.

 

“19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어느덧 엄마는 트로트 리듬에 맞춰, 손으로 살짝살짝 앞에 놓인 테이블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작게 그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저도 덩달아 장단 맞춰 마지막 소절을 엄마와 함께 나지막이 불러봅니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 마오”

 

노래하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합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의 삶에 엄마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것처럼 보여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한순간 안도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이곳에서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엄마를 보며 저는 한동안 고개를 숙였습니다. 적응한다는 것이 꼭 괜찮다는 뜻은 아닐 텐데, 엄마의 속마음을 저는 정말 알고 있는 걸까요? 휠체어 위에서 테이블을 살며시 두드리는 그 손이, 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던, 그래서 참아왔던 손은 아닐까요?

 

엄마는 늘 그랬습니다. 불편해도 불편하다 하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 하지 않고, 그저 "바쁜데 왜 왔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감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면회 시간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설 때, 엄마의 손을 놓는 순간이 저는 항상 두렵습니다. 언젠가 엄마의 마지막이 오면, 그 자리가 이곳이 아닌 오래 살던 집이기를 바랍니다. 익숙한 햇살이 드는 창가, 손때 묻은 이불 위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이 요양원의 어느 방이거나, 혹은 낯선 병원의 흰 커튼 안쪽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생각이 문득 들면 가슴 어딘가가 조여듭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인데도,

 

엄마를 이곳에 모신 것은 제가 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도, 완전히 납득되지 않는 채로 저는 오늘도 요양원을 나섭니다. 봄볕은 여전히 따뜻하고, 빨래는 여전히 바람에 펄럭이는데, 저의 마음속에는 감사와 미안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엉켜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박명주 작가

 

· 인공신장실 간호사

· 2025년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정회원

· 한국작가강사협회 정회원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