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멈추는 순간이 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발걸음이 멈출 때면,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길이긴 할까. 그런 질문들은 꽤 오래 나를 따라왔다. 성취를 중심으로 짜인 세계에선 멈춘다는 건 곧 낙오로 간주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한 템포 천천히 가는 일, 잠시 길을 잃는 일, 혹은 우회하는 일은 늘 설명을 요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어쩌면 정확한 목적지조차 모른 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상태조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방향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내가 어떤 태도로 걷고 있느냐는 것이니까. 삶은 언제나 과정과 도착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착만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크고 나선 그 그림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증명해야 했다. 글을 써도, 누군가에게 읽히고 반응을 받아야 ‘의미 있는 글’이 되었고, 단순한 취향도 더 많은 이들의 취향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보다 그걸로 무엇을 ‘이뤘는가’가 중요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어디에 도착했
태도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 길을 걷다 문득 멈추는 순간이 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발걸음이 멈출 때면,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길이긴 할까. 그런 질문들은 꽤 오래 나를 따라왔다. 성취를 중심으로 짜인 세계에선 멈춘다는 건 곧 낙오로 간주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한 템포 천천히 가는 일, 잠시 길을 잃는 일, 혹은 우회하는 일은 늘 설명을 요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어쩌면 정확한 목적지조차 모른 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상태조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방향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내가 어떤 태도로 걷고 있느냐는 것이니까. 삶은 언제나 과정과 도착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착만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크고 나선 그 그림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증명해야 했다. 글을 써도, 누군가에게 읽히고 반응을 받아야 ‘의미 있는 글’이 되었고, 단순한 취향도 더 많은 이들의 취향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보다 그걸로 무엇을 ‘이뤘는가’가 중요한 사회에서, 사
- 공감- 배려와 배제의 차이 배려와 배제의 차이를 알고 계십니까? 배려란 한자로 배려(配慮)는 配 짝 배, 慮 생각할 려,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가 고마운 마음이 들 때, 진정한 배려가 되겠지요.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계시나요? 상대의 의견은 무시한 채, 내 뜻대로 상대를 움직이며 배려라는 테두리 속에서 배제하고 있나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동생을 보호해주고 싶어서, 어른들 앞에서 제 생각을, 동생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나한테 한 질문인데, 왜 누나 마음대로, 나의 이야기처럼 말을 해” 동생의 말에,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보다 내가 좀 더 성숙할 것이라는 편견과 질문하시는 어른들에게 좀 더 잘 보이고 싶은 내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질문합니다. “왜,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뒷모습을 보여주시는 어른들 사이로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단단한 땅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준
불필요한 친절을 버리는 연습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피로한 말이 되었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칭찬은 분명 듣기 좋은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삶을 무겁게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 앞에서 한결같이 미소를 유지하고, 타인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말끝을 다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종종 남의 감정에 과하게 책임을 지고, 자기 감정은 뒤로 미룬다. 그래서 ‘좋은 사람’일수록 더 자주 지친다. 친절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지만, 그 친절이 자기 소모로 유지될 때, 그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착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은 교육의 기본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그 배움이 늘 ‘타인을 중심에 둔 태도’로 귀결된다는 데 있다. 정작 자신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면서도, 정작 자기 마음은 방치한다. 그렇게 자란 착한 어른들은 어느 날 문득, 자기 감정의 언어를 잃어버린 채, 무조건적인 수용의 자세에만 익숙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불편한 자리를 애써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 거절하고
-공감- 마음의 만족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유독 피곤한 날이 있지요. 그런 날은, 상대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매주 목요일은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스마트폰 활용 수업이 있는 날, 저녁 무렵, 더 깊은 피로가 밀려온 듯, 눈이 감깁니다. 어제는 2학기 수업 종강을 마치고,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중 한 페이지가 저의 눈길을 멈추게 했지요. ‘알아듣기 쉽도록 선생님께서 매우 잘 가르쳐주십니다.’ 예쁜 글씨체로 정성스럽게 후기를 남겨 주신 흔적에 성함이 기재되지 않았지만, 종이 한 장에서도 어르신의 모습이 떠올랐지요. 만나는 날, 늘 음료를 건네며, 조용히 말없이 기다려 주시는 어르신, ‘허허’ 미소 짓는 웃음소리에도 마음의 여유와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불편하실 때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는 어르신, “선생님 마지막 날, 오늘이 제일 귀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말씀도 기억에 남아, 딸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경험을 나눕니다, “엄마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예요.” “어르신의 이해도가 높아지신 게 아닐까?” 딸아이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년에 같은 반, 인기 있는 친구가, 친구들과 싸워서 요
회복력의 다른 이름은 일상이다 특별한 날은 인생을 바꾸지만, 평범한 날은 인생을 지탱한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상태’를 떠올린다. 위기를 기회로, 상처를 성숙으로, 무너짐을 비약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실제 삶에서의 회복은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으며, 때로는 너무 평범해서 대단하지 않게 보이기까지 한다. 병을 앓고 난 뒤의 완치는 통증 없는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고,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의 회복은 단지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약속한 시간에 어딘가에 도착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위로라는 말이 무력하게 느껴질 만큼 지쳐 있던 날들 속에서도, 그날을 그냥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견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회복력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심리학을 넘어 교육, 경영, 심지어 자기계발서 속에서도 흔히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어떤 실패에도 꺾이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다시 일어나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나아지라고. 하지만 그 회복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너무 낙관적으로 소비되는 느낌도 든다. 마치 우리는 반드시 어떤 상실을 발판 삼아 더 단단해져야
소풍, 서울로 가보실래요? 서울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KBS 라디오 방송 녹화를 위해 대구에서 서울을 방문하게 되신 스승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글쓰기를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에게는 저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부터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한 줌 수업이 활성화되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도 일대일 매칭 수업이 편해졌기 때문이죠. 지난주 수업 시간에 스승님의 서울 방문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저녁밥을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스승님께서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고,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다른 제자 두 분도 마침 시간이 되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네 사람의 약속이 정해졌습니다. 평일 저녁, 3시간의 번개모임, 어쩌면 짧은 시간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풍 전날처럼 모두가 설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소중한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함께 할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몇 년 전, 국민학교 단짝이었던 친구들과 개나리가 활짝 피었던 봄날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작은 변화에 반응할 줄 아는 마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군가 놓고 간 젖은 양산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마르고 있는 그것은 마치 계절이 바뀌었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커피가 덜 따뜻하게 느껴졌고, 출근길 셔츠 소매가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다. 나무는 훨씬 짙어졌고, 퇴근길에는 바람보다 아스팔트의 온도가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아, 계절이 바뀌고 있었구나. 우리는 대부분 어떤 변화가 이미 한참 진행된 뒤에야 그것을 인지한다. 나무는 어느새 잎을 틔웠고, 해는 늦게까지 지지 않으며, 밤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 모든 변화가 배경처럼 흐려진다. 사소한 징후들이 실은 삶의 리듬을 이끄는 전조였다는 걸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렇기에 계절을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어쩌면 아직도 살아 있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종종 감각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계절의 결을 정확히 기억한다. 새 학기 교실의 공기, 여름 장마의 냄새, 선풍기 옆에 길게 누워 있던 오후의 소리. 그러나 이제는 ‘덥다’, ‘춥다’ 같은 기능적인
나에게 들려주고픈 말 몸이 아픕니다. 이번에는 빨리 회복되지 않네요.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나아지지 않으니 성급한 마음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처음엔 몸살감기처럼 기침이 심하고 온몸 여기저기가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아 왔습니다. 한동안 의사 선생님의 당부대로 따듯한 물을 자주 마시며 푹 쉬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나를 돌보는 시간. 처음 가져보는 기회입니다. 때로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아프면서 알게 되었지요. 어릴 적엔 모르는 것들뿐이라 보고 배우느라 바빴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감당해야 했기에 정신없이 20대를 훌쩍 흘려보냈고요.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엄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라는 이름은 처음 짊어지는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이었습니다. 책을 뒤져가며 아이를 키우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도 참고하면서 그렇게 30대, 40대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몸이 약했던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방학 때마다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얌전한 성격에 몸이 약했던 큰애
-공감- 마음의 온도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 누군가의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 의미 없이 들렸던 이 한마디가 그날따라 사람을 살리는 소리처럼 들릴 때 말이지요. 초등학교 때 마음이 아픈 건지, 머리가 아픈 건지 잘 느끼지 못했던 그 날, 누군가 내가 아픈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젖은 수건을 이마에 대고 누워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표현이 서툴기도 하지만, 표현한다고 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적에는 혼자 마음 앓이를 해도 체력이 좋아서 다음날 활짝 웃음이 나왔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마음의 피로가 고스란히 몸의 피로가 되어, 체력이 좋지 못한 날에는 몸도 마음도 함께 앓게 되는 듯합니다. 아집과 고집으로 내 생각의 틀에 갇힌 나에게도, 누군가 다가와 같은 틀 안에서 함께 공감해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다들 바쁜 하루 일상에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달래느라, 상대의 마음을 챙기는 일은 점점 인연의 끝처럼 멀게 느껴집니다. 해보지 못 한 일들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보던 날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