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설명받지 못하는 상태에 들어가는 일이다
어릴 때 삶에는 설명이 있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 시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음 단계로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누군가는 알려주었다. 잘하면 칭찬이 있었고, 못하면 이유가 있었다. 선택에는 대개 정답이 있었고, 그 정답은 비교적 분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생은 아직 이해 가능한 구조 안에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순간부터 삶은 설명을 멈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아무도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 질문들 앞에 서게 된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지금 버티는 게 현명한 선택인지, 떠나는 것이 용기인지 도피인지,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성숙한 건지 미련한 건지.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결과만 돌아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개인의 책임이 된다.
어른의 피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진짜 피로는 ‘계속 결정해야 하는 상태’에서 온다. 무엇을 선택해도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채로, 다음 결정을 또 내려야 하는 삶.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책임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설명 없는 선택을 반복해야 하는 상태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어른의 삶은 유난히 불안하다.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에는 점수라는 기준이 있었고, 사회 초년기에는 성과라는 지표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기준은 흐려진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지금 이 속도가 맞는지 판단할 근거가 사라진다. 그때부터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사회의 태도다. 사회는 더 이상 설명해주지 않으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각자의 사정은 고려되지 않고, 각자의 선택은 전부 개인의 몫이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점점 더 혼자서 견디는 법을 배운다. 질문을 줄이고, 감정을 숨기고, 괜찮은 척하는 법을 익힌다.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 약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자신이 유난히 부족해서, 유독 미숙해서,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해서 이렇게 불안한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설명 없는 삶에 갑자기 던져졌는데,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이 늘어나는 일에 가깝다. 명확하지 않은 관계, 확신 없는 선택, 당장 결론 나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내는 힘.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능력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매일 쓰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의 삶에는 유난히 ‘비교’가 많아진다. 남들은 잘 살아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남들은 답을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늘 확신이 없는지. 하지만 비교는 착시다. 다른 사람의 삶은 언제나 결과만 보일 뿐, 그 과정의 혼란과 질문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설명 없는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설명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 지금의 불안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책임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삶을 정확히 이해하는 태도에 가깝다.
어른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선택을 해보겠다”는 태도다. 확신이 없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을 끝까지 감당해보는 자세, 그리고 필요하다면 방향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여지. 삶은 한 번의 결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택은 수정 가능하고, 대부분의 길은 되돌아올 수 있다.
설명 없는 삶이 버거운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설명받는 방식의 삶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어른의 시간 안에 들어와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순간, 삶의 무게는 조금 달라진다. 모든 선택에 확신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 모든 흔들림이 실패는 아니라는 것, 설명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이런 일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누군가의 해설을 기다리지 않고, 불완전한 상태로도 하루를 살아내는 것. 답을 모르면서도 질문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상태의 자신을, 이전보다 조금 덜 몰아붙이는 것. 그게 가능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라는 자리에서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