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서로에게 피곤해질까
요즘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닌데, 관계가 피곤하다.” 예전보다 인간관계를 멀리하게 됐다는 고백도 흔하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사람을 원하면서도, 사람으로 인해 쉽게 지친다. 이 피로는 특정한 누군가 때문이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데서 비롯된다.
과거의 관계는 단순했다. 연락은 드물었고, 만남은 약속이 있을 때만 이루어졌다. 감정은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교환됐다. 지금은 다르다. 관계는 상시 접속 상태에 놓여 있다. 메시지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읽음 표시는 침묵조차 의미를 갖게 만든다. 답장을 미루는 일은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태도로 해석된다. 관계는 더 촘촘해졌지만, 그만큼 관리해야 할 요소도 늘어났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운영 방식’이다. 우리는 이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답장을 적절한 타이밍에 보내야 하고, 감정에 맞는 리액션을 선택해야 하며, 상대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신호를 표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값처럼 작동한다. 관계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점검하고 조율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피로는 감정 노동과 닮아 있다. 좋아서 시작한 관계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성실하게 응대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진다. 말을 고르고, 표현을 다듬고, 혹시 오해가 생기지 않을지 미리 계산한다. 친절함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가 되고, 배려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기본 요구사항이 된다. 그러다 보면 관계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뀐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요소가 더해진다. 우리는 관계에서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좋은 친구, 센스 있는 동료,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관계에서도 성과가 평가된다. 공감을 잘했는지, 적절한 말을 했는지, 충분히 다정했는지. 이런 기준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진심을 덜어내는 대신, 안전한 태도를 선택한다. 솔직함보다는 무난함이, 침묵보다는 형식적인 반응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해진다.
그 결과, 관계는 유지되지만 깊이는 얕아진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쉬어갈 공간은 줄어든다. 사람들은 그래서 관계를 끊고 싶어서가 아니라, 잠시 내려놓고 싶어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를 원한다. 요즘의 ‘혼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고립의 욕망이 아니라, 관계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피로를 개인의 성향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예민해졌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회성이 부족해졌다고 자책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라 환경이다. 관계가 과도하게 가시화되고, 즉각성과 감정 표현이 표준이 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지칠 수밖에 없다. 쉬지 않고 연결된 상태에서, 인간은 원래의 속도로 감정을 회복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관계를 더 잘하는 법이 아니라, 관계를 덜 소모적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모든 메시지에 즉각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합의, 늘 공감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신뢰, 다정하지 않은 날도 허용되는 여지. 관계가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일이다. 관계의 질은 적당한 간격이 있을 때 지속 가능해진다.
우리는 흔히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유지라는 말에는 버틴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관계는 버티는 대상이 아니라,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과의 관계라도 결국 피로로 남는다. 요즘 사람들이 관계에서 느끼는 피곤함은 인간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관계를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과부하다.
이제는 묻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나는 사람을 만나면 지칠까”가 아니라, “왜 관계가 이렇게까지 노동이 되었을까.” 이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과하게 몰아붙이지 않게 된다. 관계를 줄이기 전에, 관계에 요구되는 기준부터 낮출 필요가 있다. 모든 관계가 깊을 필요도, 늘 따뜻할 필요도 없다. 가끔은 무심해도 괜찮고, 잠시 멀어져도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
사람에게 피곤해진 것이 아니라, 관계가 너무 많은 일을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지치게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다시, 사람을 만날 여지가 생긴다. 관계가 노동이 아니라 숨이 되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될 수 있다면 말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