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철의 인구정책 칼럼 - 이주와 공존, 정책과 삶의 경계를 묻다-

제15화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은가


"어디서 살고 싶습니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을 떠올린다. 교통이 편리하고, 직장이 가깝고, 학교가 많고, 아파트가 깔끔하니까. 그래서 거기서 산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일까? 아니면 생존인가? 나는 반대로 묻는다. "정말 당신은 거기서 살고 싶었습니까?" 삶의 선택권이 아니라, 거절당한 땅을 피한 결과는 선택이 아니다. 그건 밀려남이다. 외국인은 더 명확하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어디서 살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오직 비자가 정해준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 비자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고, 그 체류는 언제든 일방적으로 종료될 수 있다. 즉, 그들은 "살고 있다"가 아니라,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민정책은 한 번도 이주민에게 묻지 않았다.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은가?" 그리고 정작 우리는 이 간단한 질문이 국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권리를 정주권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정주권이란 어디서 살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제도적으로 보호받으며, 그 보호 속에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장 낮고도 단단한 기초권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주권을 주민등록증, 전입신고서, 혹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번호로 대체했다. 그 모든 것은 정주가 아니라 체류에 불과하다.

 

나는 광역비자가 이 정주권을 현실화할 수 있는 최초의 제도적 도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광역비자는 외국인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 지역에서 살고 싶습니까?" 그리고 그 선택을 광역자치단체가 받아 안는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추천권이 아니다. 이건 지역이 한 사람을 선택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그 사람도 지역을 선택한 서로 간의 '공동 설계 선언'이다. 나는 이 장면을 생각한다. 몽골 출신의 한 여성이 경북 봉화군을 택한다. "왜 여기입니까?" "산이 좋고, 물이 깨끗하고, 아이 키우기에 좋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군청 공무원은 답한다. "우리도 원했습니다. 당신이 여기 살기를." 이 장면 하나가 대한민국 헌법을 바꾼다. 이제 정주권은 서울이 줄 수 없다. 지방만이 줄 수 있다. 지방만이 묻는다. "당신, 여기서 살래요?" 지방만이 안다. 그가 거기서 살아도 되는 이유. 나는 제안한다. 첫째, 정주권을 국가의 새로운 기본권으로 선언하자. 모든 이주민에게 정주권 선택 기회를 제공. 단기 체류자부터 영주권자까지 지역 선택권을 열어야 한다. 현재의 비자 시스템은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E-9 비자는 특정 사업장에 묶이고, F-4는 특정 지역에 제한된다. 우리는 이 족쇄를 풀어야 한다. 둘째, 광역단위 정주 협약제 도입. 이주민과 지방정부가 서로 삶의 계획을 교환하는 제도. 이것은 계약이 아니라 약속이다.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서 미래를 꿈꾸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지역에 내 삶을 맡기려 합니다." 이 두 문장의 교환이 정주 협약의 핵심이다. 셋째, 정주권 기반의 생활자치 전환. 이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주민자치, 교육자치, 보건자치의 제도화. 이것은 정주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접근이다. 국적으로 참정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생활 자치는 그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제 국가란 무엇인가? 헌법이란 무엇인가? 주권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제 주권이 아니라 정주권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습니까?" 이 질문 하나로 우리는 국가의 설계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설계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방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인구를 끌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살 곳'을 선택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 권리 없이는 어떤 이주 정책도, 어떤 지방 살리기도 성공할 수 없다. 새 정부는 정주권을 헌법적 가치로 선언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삶의 선택권이 시민권의 핵심이 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참된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서울의 높은 빌딩이 아니라,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묻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의 새로운 헌법이 될 것이다.

 


 

류형철 (Ryu, Hyung-Cheal)

  •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 / 선임연구위원

  • 공간계획, 지역사회 설계, 인구정책 및 이주 거버넌스 전문가

  • 다양한 지자체·국가 정책과제 수행 경험과 현장 기반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과 사회, 제도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질문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음.
    rhc5419@gmail.com | 010-3309-5419

 

류형철 박사 사이트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