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다정함 첫 책의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찾은 스튜디오에서, 예기치 않은 이름다운 순간과 마주쳤습니다. 그곳에는 예비부부들이 있었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스튜디오를 따스하게 채웁니다.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사랑스러운 미소의 신부는 봄날의 꽃처럼 예쁩니다. 그 아름다움에 신랑의 마음은 큐피트 화살에 맞은 것처럼, 깊은 사랑에 빠진 듯합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애정 어린 눈빛과 다정한 마음이, 옆에서 지켜보던 저에게도 전해집니다. 그렇게 저는 그들의 설렘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순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머리는 단정하게 풀어서 손질해주세요"라고 말씀드리는 동안, 옆자리의 한 신랑이 신부를 향해 보이는 다정한 눈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랑분이 정말 다정다감하시네요. 눈에서 하트가 '뿅' 나오는 것 같아요"라는 제 말에, 대표님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답하셨습니다. "요즘에는 신랑이 다들 다정다감해야 해요. 안 그러면 결혼 못 해요." 그 말씀에 이어 대표님은 본인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소개받은 남성분들과의 만남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같았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성격보다는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적극성이 매력적으로 다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본다. 글을 쓰면 괴로움과 대면하게 된다. 걱정과 괴로움은 두려워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법, 용기를 내 맞서야 한다. 괴로움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왜 무서운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면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야 한다. 무서워도 눈을 피하거나 도망치면 안 된다. 힘들게 마음먹은 용기를 다시 내기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내면 깊은 곳에 자꾸 숨으려 하는 두려움을 달래고 어르며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인 것 같다. 처음 그런 글을 썼던 날이 기억난다. 1970년대 후반,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새집은 강북 미아동의, 작은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고 삼 남매 중에 첫째였던 나는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시골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좋았는데 서울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은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려 해도 ’촌닭’이라며 따돌리고 놀려대서 점점 학교에 가는 게 싫어졌다. 엄마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싶었지만, 맞벌이라 바쁘셨던 엄마는 늘 밤늦게 돌아오셨다.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점점 말수가 줄었고, 생각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공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중 하나가 진심 어린 공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를 저는 좋아합니다. 저는 마음이 힘들 때, 따스한 사람을 찾거나 따스한 곳을 찾아갑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릴 것 같아서, 마음 온도를 항상 적절하게 유지하려고 힘쓰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고 따스한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답니다. 저의 옷장에는 살이 쪄서 못 입고 있는 방치된 마의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검은색 마의를 사러 옷을 둘러보다, 한 사장님의 따스함이 저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지요. “어서 오세요. 저의 가게는 처음이신가요? 우리 가게는 한번 오시면 단골이 되지요. 저의 가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둘러보세요.” 반갑게 인사만 해주셨을 뿐인데, 사장님에게 느껴지는 편안함과 따스한 온기로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곳에서 30분을 가만히 앉아서 밖을 응시했지요. 옷을 사야 하나, 어떡할지 고민하면서 사장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활짝 미소 짓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의 편안한 마음의 온기가 저의 마음을
나 혼자 감당해 볼게 아내의 모든 일을 알아서 다 챙겨주는 남편이 있다. 결혼 40년을 한결같이 그렇게 그는 아내를 도왔고 그녀도 행복했다. 이런 배우자를 만난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할까? 이 부부처럼 평생 이렇게 지속 가능한 부부생활을 영위한다면, 서로 행복하고 좋겠으나 산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 않은 것 같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이해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부이다. 그러나 부부간에도 힘이 있거나, 강력한 뱃심을 가진 어느 한쪽의 패턴을 따라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이랄까.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안되면 포기하고 주저앉는다. 특히 가부장적인 사회에 익숙한 밀레니엄 부부에게는 일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남달랐다. 평생을 남부럽지 않게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 척척 해내는 남편이 자랑스럽고 그 배우자 자신도 즐거웠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더 이상 남편이 배우자의 안일한 행동을 참을 수 없어 상담실 문을 두드리고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냈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챙기는 것이 기쁨이었던 그가 변심까지 한 것은 서로의 격차이다. 한계를 초월한 배려는 부담이 되고 올무가 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 달라진 아이들, 달라진 시대 나는 어릴 때 참 착한 아이였다. 돌이켜 보면, 부모님 속을 썩인 기억이 별로 없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쉽게 말하지 않았으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시면 나도 덩달아 조용해졌고, 걱정 끼치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내가 어릴 때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에도 쉽게 속상해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며, 부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다를까?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부모가 예전보다 더 아이들에게 관대해져서 그런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 순종적인 아이였던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때는 모든 것이 귀했다. 부모님의 희생이 눈에 보일 만큼 선명했고, 원하는 것이 있어도 쉽게 가질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부모의 고생을 이해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작은 선물 하나에도 크게 감동하고, 친구가 뭔가를 가졌을 때 무작정 부러워하기보다 “
희망 고문 희망 고문의 뜻은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를 부정적으로 이용하여 그들을 조종하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거예요. 우리는 마음이 힘들 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 순간 ‘희망 고문’에 잘 빠지게 되죠. 상대방이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툭’ 던진 말에도 혼자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가능성을 기대해요. 저도 잘 그래요. 의지하고 싶으니까!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기대를 키우고 실망과 좌절을 반복하죠. 그러다 결국 포기해버리며 ‘세상이 만만치 않아’하며 현실을 자각해요. 결혼 전 회사 다닐 때, 한 커플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오랜 연애 끝에 남자의 프러포즈로 결혼했죠. 2년쯤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여성에게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이혼 후, 회사 동료와 재혼했데요. 개명도 하고 타지 가서 아이 낳고 잘산다고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듣고 직장동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며 흥분했더니 “남의 인생인데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욕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삶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삶에 더 집중하고 궁금해하고 비교했던 것 같아요. 타인의 삶에 과도하게 판단하고 집중하는 것이 옳은지
사소한 한마디 - 소통하는 가족의 온도 "여보야,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마워요." 여러분은 식사 후 이런 말을 자주 하시나요? 우리는 식탁 앞에서 감사합니다. 농부가 땀 흘린 노고를, 가족을 위해 애쓴 가장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린 주부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감사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간의 대화 방식은 부모의 영향, 가정 분위기, 성격 차이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하며, 특히 형제자매 간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도 감사 표현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욱 나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설 명절에 형님댁에서 모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여보야, 잘 먹었어, 고마워요!"라는 명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시숙님께서 밥상 인사로 화답하십니다. 그 얼굴에는 마치 젖먹이의 충만함,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었어요. 반사적으로 저는 남편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나, 같은 형제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담?” 그의 표정은 시숙님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저는 "밥 잘
Off the hook – 위기를 모면한다 낚싯바늘에서 운 좋게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우리도 가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깜빡 잠이 들어 친구와 한 약속 시간을 놓쳐버렸는데 친구가 먼저 남겨놓은 취소 문자를 발견했을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출근길 교통체증이 심해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우회도로를 발견해서 쉽게 빠져나왔을 때도 있을지요?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아마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겁니다. 명절 음식 할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천근만근인데, 시어머니께서 미리 다 준비해 놓았으니 천천히 오라 하시면 어떨까요?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말할 수 있는 안도의 영어 표현을 오늘 알려드리려고 해요. <Off the hook>이라는 표현은 “낚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부터 낚시할 때, 사람들은 낚싯대 끝에 바늘 <hook>을 달았어요. 거기에 미끼를 끼워서 물고기를 유인하지요.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날카로운 낚싯바늘에 걸리게 되고 도망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때때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낚싯바늘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유롭게 물속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습니다. 그날 저녁
설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법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큰 피로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있었던 만큼, 다시 기존의 패턴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흔히 ‘명절 후유증’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비일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명절이 주는 분위기는 평소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설 연휴 동안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장시간 머물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며, 평소보다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수면 패턴이 흐트러지는 일이 잦다. 명절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휴가 후의 피로감처럼 몸과 마음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신체와 심리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완벽한 복귀보다 작은 루틴부터 설 연휴가 끝난 후 일상 복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생활
집마다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파리 고택의 우편함에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넣은 작가가 있다. 그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박희성 작가이자 건축가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고택들을 골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인터뷰했다. 건축가로서 집 구조와 디자인 등 건축물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있는 추억담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만일 당신의 우편함에서 이런 편지를 발견한다면 과연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뉴욕의 가파른 계단 상가 이층집. 70년 된 기찻길 옆 집이 떠올랐다. 고등학생이 될 아들을 위해 학군 좋은 부동산을 들렀다. 나온 것이 없단다. 1년 후 오란다. 1년 후에도 없다는 대답에 앞이 캄캄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어 1년 전에 의뢰했고, 이 동네 지인의 추천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그제서야 전화번호 달랑 적어놓고 가란다. 미국에서는 이민자가 원하는 학군을 찾아 집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일명 좋은 학군에는 아무나 오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부동산에서부터 고객 정보가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이다. 뜨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