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중요한 건 태도
세상은 점점 냉소적으로 흘러간다.
진심을 다하면 ‘순진하다’고 하고, 선의를 베풀면 ‘계산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돕는 이의 손길에조차 의심의 그림자가 덧씌워지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진심보다 ‘뒷배’와 ‘능구렁이’가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진심은 촌스럽고, 다정은 피곤하며, 예의는 약한 사람의 도구처럼 취급받는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말한다. “어차피 그래봤자 안 통해.” “내가 왜 먼저?” “괜히 상처만 받아.”
그리고 냉소의 방패를 들어 올린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정말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일까. 세상이 날이 설수록, 우리는 그보다 더 단단하고 성숙한 태도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가장 냉소적인 사람은 대개 상처 입은 사람이다. 믿었던 것에 배신당했고, 다가갔던 만큼 밀려났고, 무언가를 바랐다가 좌절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 그 기억의 잔해들이, “나는 다 알아. 다 겪어봤어. 그래서 더 이상은 기대하지 않아”라는 말로 변한다. 그 말은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아주 깊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숨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태도’로 나타난다. 조롱, 무관심, 반어, 비꼼, 혹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무채색의 말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은 그런 태도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냉소는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는 방편일 수는 있어도, 마음을 살리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래 머물수록, 사람은 점점 삶에 실망하게 되고, 타인에게 인색해지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까지 냉담해진다. 그러니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상을 비웃는 눈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한 다음에도 따뜻함을 놓지 않으려는 어떤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 태도는 다정함의 다른 말이다.
무지하거나 순진해서가 아니라, 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다정함.
그건 오히려 강함에 가깝다. 상처를 통과하고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사람, 비에 젖은 하루에도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일방적인 오해를 받고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은 절대 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는 사람이고, 겪은 사람이고, 견딘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견딤이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때때로 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장면에서 그런 사람을 본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준 손, 잘 모르지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 무표정한 일상 속에 가만히 남긴 미소 하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날에는 그런 태도 하나가 하루를 견디게 한다. 거창한 위로도, 큰 선물도 아니고, 그저 내 앞에 놓인 사람이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그 태도 하나가 마음을 붙잡는다. 우리는 사실, 그런 작은 태도에 의해 움직이고, 구원받는다.
냉소는 쉽다. 비웃는 일은 안전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태도를 믿는다.
잘하려는 마음, 따뜻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꾸준히 훈련하고 기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흔드는 일은 여전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냉소는 잠깐을 지켜줄지 몰라도,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건 그 모든 걸 알고도 여전히 다정하고 싶은 태도다.
오늘 하루도,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낸 하루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