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감정을 해석하는 책, 『상처의 밀도』 최보영 작가 인터뷰
최근 서점가에는 위로와 치유를 이야기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상처의 밀도』는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상처를 빨리 극복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책이다.
미식 칼럼니스트이자 예술경영과 큐레이터 활동을 해온 최보영 작가는 이번 책에서 감정을 개인의 성격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조로 해석한다. 그는 상처를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압축된 감정의 밀도’로 바라보며, 감정을 이해하는 태도가 결국 삶을 덜 흔들리게 만든다고 말한다.
다음은 『상처의 밀도』를 집필한 최보영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주]

“상처는 크기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압축된 감정의 흔적입니다”
♥ 『상처의 밀도』라는 제목이 독자들의 시선을 끕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제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통 상처를 큰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오래 흔드는 것은 거대한 사건보다 오히려 오랫동안 쌓여온 작은 감정들입니다.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이나 설명하지 못한 마음 같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압축되고 결국 하나의 감정으로 남습니다. 저는 그 상태를 ‘상처의 밀도’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상처는 크기보다 시간이 만든 감정의 농도라고 생각합니다.
♥ 이 책은 감정을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와 관계 속에서 바라봅니다. 이런 시각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살다 보면 감정은 개인의 기분 문제처럼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감정은 대부분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지금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감정을 ‘지금의 기분’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만든 반응’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시각이 이 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예술경영과 큐레이터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글쓰기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큐레이터의 일은 작품을 해석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시선을 읽는 일이기도 합니다. 같은 작품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지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감정을 단순히 설명하기보다 하나의 장면처럼 바라보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위로나 치유를 다루는 책들이 많습니다. 『상처의 밀도』가 기존의 치유서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이 책은 상처를 빨리 극복하는 방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이해하지 않은 채 넘어가려 할 때 감정이 더 오래 남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종종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덮어버립니다. 하지만 감정은 설득되기보다 이해될 때 조금씩 풀립니다. 이 책은 상처를 해결하려는 책이라기보다 상처를 이해하는 태도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이 정의하는 ‘상처’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상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감정의 잔상입니다. 어떤 경험은 지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은 그 자리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장면을 만났을 때 다시 반응합니다. 그래서 상처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책에서는 상처를 없애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서운함은 관계의 거리로 남고, 분노는 피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형성됩니다”
♥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감정을 판단하기보다 관찰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감정이 생기면 먼저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이해하려면 ‘이 감정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감정을 관찰하는 순간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파도가 아니라 흐름을 가진 경험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불안이나 조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타인의 삶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선택과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게 되면서 삶의 속도까지 비교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비교가 결국 자기 감각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삶은 참고가 될 수는 있지만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짜 공감은 어떤 모습인가요.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도 그랬어”라는 말로 공감을 표현하지만 그 말은 감정의 중심을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옮기기도 합니다. 진짜 공감은 말을 많이 하는 능력이 아니라 감정이 흐를 공간을 만들어주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덜 흔들리게 만듭니다”
♥ 바쁜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반응하는 삶은 늘 소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흔들리는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창한 변화보다 자신의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오늘 나는 언제 마음이 흔들렸을까”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관계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지키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감정을 대신 살아줄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의 감정 옆에 서는 것과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덜 두려워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은 우리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상처의 밀도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맺으면서...
최보영 작가와의 대화는 마치 고요한 미술관 복도를 걷는 듯한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나약함'의 증거로 여겼던 상처를 '살아온 시간의 밀도'라는 아름다운 역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을 내려놓을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지점입니다. 상처를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 결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는 일, 그것이 바로 더 단단한 내일로 나아가는 가장 정직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밀도를 온전히 수용하고자 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인터뷰가 하나의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경제신문 편집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