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는 한철
“과메기 좋아해?” 오랜만에 횟집에서 만난 선배가 묻는다. “싫어하진 않아요.” 라고 대답했지만, 여동생이 화장실에 간 동안이라 먼저 시킨 안주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선배는 일단 주문하고 동생이 오면 좋아하는 걸 하나 더 시키자며 과메기 한 세트를 주문했다. 과메기는 한철이라 이때가 아니면 언제 먹냐며 넉살이다. 과메기를 처음 먹어 본 건 5년 전이었다.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함께 작업했던 연출 선생님이 무척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매일 있는 연습 때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즐기셨던 애주가였는데 음식 솜씨도 꽤 좋았다. 그런 그는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철마다 별미 음식을 손수 만들어 오시곤 했다. 매년 과메기 먹는 날을 정해서 각자 한가지씩 곁들여 먹을 쌈이나 야채를 가져와 어울리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뵐 수 없기에 더욱 아쉽다.
과메기는 11월부터 1월까지가 제철이다. 구전에 의하면 한양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가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가지에 꿰어져 있던 말린 물고기를 먹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수군에서는 전투가 없을 때 고기잡이에 열중했다고 하는데, 당시 풍부했던 청어는 수군과 피난민들의 양질의 식량이 되기도 했고, 무기와 화약을 매입하는 수군의 중요한 자금줄이었다고 한다. 조선 수군에 포작선(鮑作船)이라는 고기잡이 배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잡아들인 청어들은 절일 만큼 소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널어다 말릴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과메기가 되었다고 한다.
과메기를 처음 접했을 때 냄새와 식감 사이에서 엄청 갈등했던 기억이 난다. 기름진 생선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는 크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각오는 하고 먹어야 했다. 또 나무껍질을 씹는듯한 식감에도 맛있다고 찬사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럭저럭 괜찮다.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큰 음식이지만 나도 과메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연극팀은 매년 요맘때쯤 과매기 파티를 한다. 과매기에 진심인 사람들, 어떤 사람은 특히 좋은 품질의 과매기를 지인을 통해 직접 공수해오고, 그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쌈추, 봄동, 다시마, 마늘, 쪽파, 미나리, 참기름, 막장 등을 가져와서 소주와 곁들여 먹는다. 입에 한가득 넣고 엄지를 치켜올리며 모두들 행복해한다. 소소한 정을 나누며 우리네 삶도 익어간다. 과매기가 한 철이듯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즐거운 순간도 한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선배의 일장 연설을 듣는 동안 각종 야채와 과매기가 담긴 접시가 나왔다. 여동생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안주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태평양, 대서양의 푸른빛을 등에 진 청어는 바닷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서늘한 해풍을 고고하게 견딘 후, 횟집 주방장 손끝의 현란함을 빌어 우리 앞에 과메기로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우리는 왁자지껄 삶의 애환이 넘치는 횟집 한 모퉁이에서 취향에 따라 제각각인 과메기를 맛있게 먹는 비법을 나눈다.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는 동안 단단하게 굳은살 속으로 담백한 맛을 꽁꽁 감추며 더욱 쫄깃해진 과메기, 한철이라 아쉬움이 크다.
건배를 외치는 선배의 투박한 말투와 정이 묻어나는 눈빛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행복이 별거더냐? 이런 게 행복이지?” 기분 좋게 들이킨, 소주 한 모금이 기름 묻은 목젖을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