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층간 소음과 관계의 경제학


아파트에서의 삶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관계의 연속이다. 내 공간은 나만의 세계 같지만, 그 벽 너머에는 다른 삶이 존재한다. 가끔은 그 경계가 무너질 때가 있다. 며칠 전,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날은 조용히 책을 읽으며 보내던 평범한 저녁이었다. 그런데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문을 열자 윗집 할머니가 서 계셨다. 다짜고짜 “여기서 무슨 공사라도 하는 거야? 쿵쿵거리는 소리가 아주 시끄럽잖아!”라며 화를 내셨다. 당황했지만 차분히 대답했다. “저희 집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혼자 조용히 있었거든요.”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거실을 둘러보시더니 그제야 “아, 내가 잘못 들었나 보네”라며 돌아가셨다. 그 순간에는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만난 할머니는 뜬금없이 “이 집 아들이 아주 잘생겼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아들은 없었기에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에요”라고 정정했더니, 할머니는 “아, 그럼 아들이 아니었나? 아들 같아 보였는데”라며 웃으셨다.

 

갈등과 오해 속의 심리적 비용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말이 은근히 나를 당황스럽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층간 소음처럼 보이지 않는 갈등은 단순한 소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관계의 문제이며, 사람 사이의 신뢰와 이해가 얽혀 있는 심리적 비용의 문제다.

 

이웃 간의 갈등은 개인적인 불편함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소음 갈등이 심화되면 법적 분쟁으로 발전하거나, 심지어 부동산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이런 문제는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며 관계 속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신뢰를 위한 작은 투자

관계를 관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경제활동에서도 신뢰가 자산으로 작용하듯, 이웃 간 신뢰는 공동체의 중요한 자산이다. 작은 오해가 커지지 않도록 소통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그날 할머니가 내 집을 오해했을 때, 나는 좀 더 유쾌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젊어 보였나 봐요.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넘겼더라면, 할머니와의 관계는 더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는 투자는 길게 보면 우리 삶의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법

사람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갈등은 우리를 깎아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작은 오해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웃 간의 층간 소음 문제는 단순히 아파트 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더 넓게 보면 사회적 신뢰와 경제적 효율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작은 이해와 배려가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더 나은 사회적 자산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