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봄은 시작이다


 

비가 온다. 봄을 재촉하는 비다. 겨울 끝에 내리는 비는, 떠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쓸쓸하다. 비가 그치면 봄 내음이 묻은 따뜻한 바람이 간지럽히듯, 코끝을 스치며 지나간다. 봄바람은 쌀쌀하지만, 부드럽다. 온기를 품은 칼바람은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콕콕 찔러 꿈틀거리고 싶게 한다. 그래서인가? 봄이 오면 뭐라도 시작하고 싶고, 괜히 설렌다.

 

흔히들 봄은 시작의 계절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봄에 유난히 결혼식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올봄엔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식을 못 치른 예비부부들의 결혼 소식이 많은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앱 청첩장을 보낸다. 받자마자 아름다운 신랑 신부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바로 볼 수 있고, 초대 메시지와 함께 예식장 주소, 축의금을 받는 계좌번호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매우 간편해졌다. 예전에는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의 카드에 초대의 글을 담아 우편으로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전해드렸는데, 어느새 카드 청첩장은 옛날식이 되어 추억 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이번 주말에 가야 할 결혼식은 두 곳이다. 그런데 다음 주말에도 가야 할 결혼식이 또 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마음은 너무 기쁘지만, 예상외의 지출에 휘청거리는 경제적 현실은 슬프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과 출산이 자꾸 줄어드는 요즘에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 나이 여섯 살 때의 봄, 유난히도 나를 예뻐했던 넷째 이모의 결혼식이 생각난다. 이모는 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지만, 예쁜 색동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고 수줍게 웃던 신부의 모습과 파란색 비단옷을 차려입고 갓을 썼던, 멋진 신랑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커다란 초가집 앞마당은 마을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외갓집 부엌에서 마당으로 연신 따끈한 국수와 김이 폴폴나는 돼지머리 고기를 바쁘게 나르던 엄마와 이모들 모습도 생각난다.

 

나는 종일 툇마루 구석에 기대어 훌쩍거렸던 것 같다. 이모가 시집가면 다시는 볼 수 없다면서 어른들이 계속 놀려댔기 때문이다. 특히 막걸리 몇 잔으로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외삼촌이 짓 굳게 나를 놀렸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약이 올라 눈물이 터질 것 같다. “어떻게 하냐? 이거 큰일 났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이모를 못 볼 텐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개구쟁이 외삼촌이 어찌나 얄미웠는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나도 이모 따라 시집갈래” 그러자 마당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외삼촌은 그런 내게 혀를 날름거리면서 더욱더 약을 올렸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하냐? 이모 따라 시집가면 너 다시는 집에 못 와. 평생 그 집에서 살아야 해. 그럼 엄마 아빠도 못 볼 텐데?” 나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모랑 헤어지는 게 싫기는 해도 엄마랑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나는 절대로 시집가지 않을 거야”라고,

 

하지만 그 결심은 조금씩 흐릿해졌고 나는 성장했다. 국민학교 가는 길, 육교를 건너자마자 있었던 어느 웨딩 샵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 때문인 것 같다. 결혼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봄마다 새로운 드레스로 갈아입고 눈부시게 아름다움을 뽐내던 새신부의 모습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혼에 대해 아름다운 환상을 갖게 했다.

 

그 시절의 소녀들은, 멋진 결혼식에서 모두에게 축하받는, 아름다운 새신부를 꿈꾸었고, 그 시간이 여자로 살면서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 소녀들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 설렘처럼 봄은 항상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을 싹틔운다.

 

올해의 봄을 어떻게 예쁘게 꾸며 볼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한 봄 소풍을 선물해야겠다. 달력을 들여다보며 마음은 콩닥거린다.


 

 

▲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