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
‘까 똑, 까 똑’ ’ 초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한테 메시지가 왔다. ‘생일 축하해. 늘 도전하는 멋진 내 친구, 항상 응원할게’ 그리고, 화장품세트 쿠폰도 함께 보내왔다. 아직 며칠 남았는데 제일 먼저 축하해준 친구의 마음이 고맙고 반가워서 바로 전화했다. “생일 되려면 한 참 남았는데 벌써 선물을 보냈어? 고맙다. 친구야.”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하하하하, 있잖아, 하하하하하” 친구의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나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한참 웃고 나서 친구가 말했다. “내가 까먹을까 봐 미리 보냈어. 나이가 들어 그런지 요즘 자꾸 깜빡하는 일이 많아서 말이야, 아무튼, 생일 축하해.” 맞는 말이었다. “그래, 우리가 벌써 그런 걱정할 나이네.” 그렇게 한동안 수다를 나눈 후, 우리는 꽃피는 봄날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따듯함이 내 몸 전체로 퍼지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참 좋아서 한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생일을 챙기기 시작한 건 직장 다니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아침 밥상에 올라온 미역국과 식구들의 덕담 한마디면 ‘감지덕지’였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선물을 주며 특별하게 챙기는 생일은 사치였다.
나의 첫 생일파티는 첫 직장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했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여자 일곱 명의 모임이었다. 회사에서 늘 점심을 같이 먹고, 퇴근 후에 함께 맥주도 마시고, 주말에 함께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서로서로 생일도 챙겼었다. 내 생일은 2월이었기 때문에 우리 중에서 생일이 가장 빨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첫 생일파티를 우리 집에서 하게 되었다. 나는 기쁘고 설렜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 우리 집의 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사정상 잠시 엄마와 단둘이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때였는데, 엄마도 일하러 다니셨고, 나도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빠듯했던 때라 사람들을 집에 초대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커진 나는, 저녁 밥상을 마주한 엄마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의외였다. “별걱정을 다하네, 친구들 다 데리고 와. 엄마가 미역국에 잡채랑 반찬 몇 가지 해놓을 테니까, 집에서 밥 먹고 슈퍼에서 과자 몇 개 사다가 맥주 한 잔씩 하면 되지, 부끄러울 거 하나도 없어. 형편대로 하면 돼.” 나는 배짱 두둑한 엄마의 말씀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드디어 생일날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해 보니 맛있는 반찬 가득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쪽지가 보였다. “오늘이 마침 보름날이라 오곡 밥해 놨다. 밥이랑 미역국은 알아서 떠다 먹으렴, 우리 딸 생일 축하한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쪽지를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신나게 밥을 푸고 국을 날랐다. 친구들은 너무 맛있다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우리 일곱 명은 손발이 얼마나 잘 맞는지 식사 후엔 일사불란하게 설거지까지 후다닥 해치웠고 곧 맥주파티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준비해온 선물들을 내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놓았다. 그리고 빨리 선물을 뜯어 보라며 재촉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립스틱, 에센스, 파운데이션, 마스카라, 아이쉐도우, 에센스, 모두 합치니 화장품 풀세트였다. 고마움에 감격할 틈도 없이 친구들이 달려들어 내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한 친구가 벽에 걸려 있던 거울을 가져와 내 앞에 놓으며 말했다. “쨔잔. 어때? 너무 예쁘지?” 부끄럽기도 하고, 벅차기도 한 묘한 기분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울컥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색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친구들도 따라 웃었다. 그날 밤은 동네가 떠나가도록 웃고 떠드는 우리 일곱 명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화장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출근 준비하며 친구들이 준 화장품을 바르면 기분이 너무 들떠 행복했던 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벌써 30년 전의 추억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거울 앞에 서면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화장하다가 한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거울 속에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 마음속에 꼭 박혀버려 결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준 엄마와 친구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가난하고 쓸쓸했던 생일을 행복한 날로 바꿔준 엄마와 친구들의 사랑 덕분에 나에게 생일은 일 년 중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날이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챙기며 행복한 생일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