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20년 전 금요일 밤, 나는 살고 싶었습니다 (1편)


금요일 밤입니다.

일주일 동안의 수고했음을 격려하고, 매일 반복되는 생각에서 잠시 떠나 봅니다.

 

한 시도 놓지 못했던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으니 시간은 멈춰진 듯 느껴집니다. 이렇게 찾아온 평온함은 처음입니다. 이런 낯선 어색함조차 말없이 내려놓아 봅니다. 잔잔하게 스며든 평온함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20년 전의 금요일이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날 밤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의 아픈 날이었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을래, 죽는 게 더 나아”

”안돼. 그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어?”

 

그때 나는 어린 아들 둘을 홀로 키우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철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많이 슬퍼하고 아팠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또, 처음 해보는 엄마라 어렵고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을 만큼, 내 주위의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눈물과 통곡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아기들에게 바보 같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할 수만 있다면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시절이었습니다.

 

그즈음이 IMF 때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나와 남편은 만화 영화제작사에서 일했습니다. 회사는 유럽 쪽의 만화 영화제작 하청을 받아 작화 및 촬영, 편집작업 후에 다시 수출하는 회사였습니다.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였던 우리는 이 일을 시작하고 약 5년 정도를 비수기로 보내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맞이한 성수기 3년여 동안 연출 감독과 몇 년간, 한 팀으로 일하며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조금씩 벌이가 안정적으로 되어 가면서 미루어 왔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잘살자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때쯤 IMF가 터지면서 회사가 하나, 둘씩 문을 닫았던 것 같습니다. 믿었던 감독은 몇 달 동안 밀렸던 월급을 들고 잠적했고, 그 여파로 우리는 카드값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1년 동안 다른 일을 해가며 버텨냈습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틈틈이 부업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름 행복했습니다. 그리 큰 욕심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은 아니었나 봅니다. 더 잘 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시부모님은 지방에서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시어머님의 음식 솜씨가 좋아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있었습니다. 겨울철만 빼고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일손이 부족할 만큼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큰형님 가족과 시누이까지 합류하여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고 갓난아기 둘을 키우느라 자주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은 더 이상 혼자 벌이로는 감당할 수 없었는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부모님은 남편이 일손을 거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내려간 남편은 한 달쯤 될 때부터 생활비만 보내고, 전화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조차 장사에 지쳐서였는지 내 전화를 귀찮게 여겼습니다. 친정엄마에게 의논하고 싶어 전화했는데 엄마에게도 힘든 상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힘들어하며 매일 눈물 흘리며 몇 달을 보냈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우 일곱 달 된 둘째가 나처럼 매일 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는 세 살짜리 첫째 아들의 눈빛을 처음 똑바로 보았습니다. 그 슬픔에 찬 눈빛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꼭 바보 같아.”

“그렇게 슬퍼하지만 말고 당장 할 수 있는걸 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린 아들들 앞에서 부끄러움과 눈물은 범벅되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래. 현아. 우리 아빠를 보러 가자.”

“가서 직접 말하자.”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살자고 말이야.”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