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라이브카페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라이브카페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사장님이 4박 5일간 여행 계획이 있어, 그동안 가게 문을 닫을 수가 없으니 대신 영업을 부탁한 것이다. 친구들과의 해외여행은 생애 처음이라 무척 설렌다며 다소 흥분돼 보였다. 난 흔쾌히 승낙했다. 이곳은 손님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주점 같은 곳으로 술과 음식에 노래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장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손님이 많지 않다면,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나도 살짝 흥분되었다.
나는 이 가게의 11년째 단골손님이다. 이곳은 다른 라이브카페와는 다르게 아주 특별한 점이 많다. 그런 이유로 나처럼 10년 이상 된 단골이 꽤 많다. 이곳에 가면 손님들끼리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도 하고 가끔 합석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르며 스스럼이 없다. 옛날 동네 주막집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술값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저녁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자주 갈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사는 여동생과 가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두 달에 한 번 정도 다녔었다. 우리 자매에겐 그야말로 소중하고도 특별한 일상탈출의 공간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때 여기도 유흥주점이라는 이유로 2년여 동안 영업을 못 했었다. 그때 나는 노심초사했다. 이곳도 다른 가게들처럼 경제적 타격으로 문을 닫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그동안 가끔 다니던 단골손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더 자주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힘들게 버텨온 사장님께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여기 단골손님이었던 모두가 절실하게 느꼈을 이 특별한 공간의 소중함일 것이다.
나는 노래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기억하기로 맨 처음 마음속에 꾸었던 꿈은, ‘노래하는 가수’였다. 내가 얼마나 노래에 진심이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니며 노래하는 단짝 친구가 있었고, 집에서도 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함께 부르며 놀았다. 친구나 동생들이 노래를 잘 부르는 비결을 물어볼 때면, 나는 이렇게 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를 부를 때는 거기에 어울리는 좋은 소리를 내면서 소리의 크기와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한다. 노래도 음식과 같아서 맛을 잘 살려서 불러야 듣는 사람도 맛있게 들을 수 있다”고 말이다.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음악의 세상 속에 푹 빠져든다. 이런 내가 라이브카페 1일 사장을 3일이나 할 수 있다니, 쉽게 만날 수 없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가끔 막연하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나도 여기처럼 분위기 좋은 라이브카페를 운영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좋을까? 잘 할 수 있을까? 자주 내렸던 결론은 너무 행복하겠다는 것. 매일 음악 소리가 들리고, 노래도 할 수 있고, 악기도 연주하며 사는 일상. 게다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하지만 가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을 파는 곳이니 만취한 사람들이나 남모를 슬픔에 자신을 감당 못 하고 술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또, 잘 된다면 걱정 없겠지만 경기침체 때마다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유흥업소이니 그럴 땐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뭐든 정답을 미리 알 수는 없다. 닥쳐서 해봐야 알겠지.
카페의 임시 사장이었던 지난 3일 동안의 경험은 내게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그동안 얼굴 못 봐서 궁금했던 친구들에게 핑계 삼아 문자를 했다. 고맙게도 몇몇이 찾아와 매상에 도움을 줬다. 또 가끔 얼굴만 보며 지나쳤던 손님들이 말을 걸어와 조금 더 친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음날 사장님 돌아오자마자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고맙다며 선물과 함께 봉투를 주셨다. 그냥 단골손님이었던 나를 믿고 가게를 맡겨 주신 것만으로도 무척 뿌듯했는데 일당에 선물까지 챙겨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도 이번 일과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뭐든 경험해 보고 싶다. 인생 3막은 두려움에 주저하고 망설일 시간이 없다. 용감하게 도전하자. 나의 인생 3막은 시작부터 이렇게 좋은 일, 좋은 사람들이 자꾸 생기니 참 기쁘고, 감사하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