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 거리 두기, 그리고 담백한 삶의 선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의도적으로 형성된 관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과 감정이 얽히며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균형 잡힌 모습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행동이 부딪히며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얼마 전, 오래된 모임에서 그런 피로감을 느낀 일이 있었다. 오랜 인연의 모임이었지만,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한 분이 자신의 삶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분은 자신의 생활이나 소유물을 화려하게 포장해 말하며 관심을 받으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알고도 부추기며 대화를 키우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넘어갔지만,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그분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과장하려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알고도 부추기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관계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이런 반복적인 상황은 피로감을 넘어 관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했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관계 속에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관계는 때로는 에너지를 주지만, 반대로 소모감을 주기도 한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주고, 나 자신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용기를 내어 관계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담백한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기보다는,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기보다는, 소수의 진정성 있는 관계가 삶에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담백한 관계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행복한지를 스스로 돌아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정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위한 선택이라면, 그리고 그 관계가 나에게 소모적이었다면, 정리는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물론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나만의 고립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맺는 관계들이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반복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리고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관계를 돌아보고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삶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소중히 여길 사람과의 관계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삶을 더욱 풍요롭고 평온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때로는 관계를 정리하며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담백한 삶의 태도와 관계를 선택하는 용기를 잃지 말자.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