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회복은 쉬는 일이 아니라 덜 소모되는 일이다


스트레스는 늘 ‘양’의 문제처럼 말해진다. 일이 많아서 힘들고, 일정이 빽빽해서 지치고, 쉴 틈이 없어서 예민해진다고 믿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정말 우리를 오래 지치게 하는 것은 일의 총량보다, 그 일에 붙어 있는 감정이었다. 참았던 말, 정리되지 않은 관계, 설명되지 않은 억울함, 내가 왜 그랬을까 곱씹게 되는 장면들. 스트레스는 사건보다 오래 남는 반응에 가깝다. 끝난 일인데 내 안에서는 끝나지 않은 상태. 바로 거기서부터 피로는 깊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을 가고, 운동을 하고, 기분 전환을 하라고 한다. 이런 조언들은 틀리지 않다. 다만 늘 충분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도 개운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은 소파에 누워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일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멍하니 화면을 넘기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방금 있었던 대화가 반복된다. 누군가의 표정, 말투, 내 반응, 내가 하지 못한 말이 다시 재생된다. 몸은 멈췄지만 마음은 멈추지 못한 상태. 이때 휴식은 회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먼저 ‘무엇이 끝나지 않았느냐’를 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개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큰 사건 하나가 아니라, 작게 남아 있는 찌꺼기들이다. 답하지 못한 메시지, 미뤄둔 결정, 애매하게 걸쳐 있는 관계, 정리되지 않은 감정. 이런 것들은 소리 없이 남아서 내 안의 에너지를 계속 끌어간다. 스트레스는 폭발하는 감정보다, 오히려 오래 눌러놓은 감정에서 더 잘 자란다. 화를 내지 못한 분노, 슬퍼하지 못한 상실, 끊지 못한 불편함. 그러니 회복은 마음을 달래는 기술이기 전에, 내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감각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한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자신을 자꾸 의지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것도 못 견딜까”, “별일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지”, “다들 하는데 나만 힘든가” 같은 생각은 스트레스 위에 또 다른 압박을 얹는다. 하지만 피로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나를 몰아붙이는 방식으로는 그 신호를 잠재울 수 없다. 오히려 더 잘못 듣게 만들 뿐이다. 회복은 강해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유난히 소모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건 무엇일까. 첫째, 반응을 줄이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자극에 다 반응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말에 즉시 마음이 흔들리고, 사소한 연락에도 감정이 출렁이며, 남의 기분까지 내 몫처럼 짊어진다. 그러나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감정을 지킬 틈을 잃는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반응의 기준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말은 흘려보내고, 어떤 관계는 적당한 거리에서 두고, 어떤 문제는 내 몫이 아니라는 걸 판단할 줄 아는 사람. 회복은 결국 ‘덜 반응하는 기술’과 연결된다.

 

둘째, 끝난 일을 끝났다고 정리하는 연습이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속에서 과거를 반복 재생한다.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참았나”, “저 사람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물론 사람은 뒤늦게 생각이 많아지는 존재다. 하지만 모든 장면을 다 복기할수록 감정은 정리되기보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회복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런 판단을 한다. 더 생각한다고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이것은 무책임이 아니라 자기 보호다. 끝난 일을 끝났다고 인정하는 능력은 생각보다 중요한 해소 방식이다.

 

셋째,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꾸 해소법을 찾지만, 실제로 더 필요한 것은 소모의 구조를 줄이는 것이다. 매번 기분 전환을 해도 다시 지치는 이유는, 나를 지치게 만드는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회복만 시도하기 때문이다. 나를 늘 초조하게 만드는 사람, 늘 죄책감을 남기는 일정, 늘 과하게 신경 쓰게 되는 환경이 있다면 그걸 먼저 줄여야 한다. 회복은 마사지를 받거나 하루 푹 자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내 에너지를 새게 만드는 구멍을 막는 데서 시작된다.

 

넷째, 몸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마음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몸을 통과한다. 어깨가 굳고, 턱을 악물고, 숨이 얕아지고, 자꾸 단것이 당기거나 이상하게 피곤한 상태. 이런 몸의 신호는 감정보다 솔직하다. 많은 사람들은 머리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몸으로 무너진다. 회복은 감정을 분석하는 일만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존중하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은 쉬어야 한다는 감각, 지금은 혼자 있어야 한다는 필요, 이 약속은 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몸은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다.

 

결국 스트레스를 잘 다루는 사람은 특별한 비법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어디서 무너지는지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무엇이 나를 소모시키는지, 누구 앞에서 내가 유독 작아지는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평소보다 더 예민해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미리 줄이고, 미리 멈추고, 미리 물러선다. 그것은 약한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오래 쓰기 위한 지혜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할 적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대개 내 안의 경고음이다. 지금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 이 관계가 버겁다는 신호, 이 방식으로는 오래 못 간다는 신호. 그러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극복이 아니다. 먼저 듣는 일이다. 그리고 조정하는 일이다. 사람은 풀어야 할 것을 무조건 푸는 방식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덜 감당해도 되는 것을 알아보고, 덜 짊어져도 되는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회복된다.

 

스트레스를 잘 푸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유난히 닳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는 사람이다. 회복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나를 소모시키는 것들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판단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을 찾기 전에, 먼저 나를 지치게 하는 방식부터 바꾸자고. 사람은 덜 무리할 때 비로소 덜 무너진다.

 

 

최보영 작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UM Gallery 큐레이터 / LG전자 하이프라자 출점팀
 
[주요활동]
신문, 월간지 칼럼 기고 (매일경제, 월간생활체육)
미술관 및 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팅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