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외로움과 감기의 상관관계


큰아들이 3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귀가했다. 애지중지 키운 옥동자 같은 자식이 춥고 딱딱한 땅에서 종일 뛰고 뒹굴며 고생했다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들 귀한 자식이 아니겠냐마는 특히 이 녀석은 임신하고 열 달 내내, 물 한 모금 못 먹는 입덧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얻은 꽃잎처럼 귀하고 여린 아들이다. 그만큼 체질적으로 약한 녀석이라 키우면서도 항상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귀한 아들이 지독한 감기를 달고 왔다. 열나고, 기침하고, 몸살 기운까지 있는지 희고 고운 팔다리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씩씩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훈련소에서 지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로 미루고 죽과 약을 먹여서 일찍 재웠다.

 

나도 지난주부터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이번 감기는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심한 몸살로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열흘간 앓고 있는데 아직 완벽하게 나아지지 않는다. 아마도 3~4일은 더 지나야 나아질 것 같다. 감기에 걸리고 며칠은 온몸이 찌뿌두둥 하더니 5일째 접어들자 너무 아파서 완전히 뻗어버렸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자책이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랬지?”,라는 내면의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 다음엔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몰라. 몰라. 아무것도 못 하겠어.” 그런 생각으로 반나절을 쉬고 나니 “괜찮아. 좀 쉬면 나을 거야.”라며 스스로 위로 하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다. 요즘은 환절기가 무색할 만큼 계절의 변화가 급격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는데 겨울이 시작된 기분이다. 시원함을 느낄 새도 없이 추워진 것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는 감기. 갈수록 더 지독해진 증상들로 우리를 괴롭힌다. 감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궁금하여 알아보다가 감기의 유래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를 찾아냈다.

 

국립민속 박물관에서 출간한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편)에 따라서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옛날, 옛날에 성기가 두 개인 왕자가 살고 있었다. 그가 장가 들 나이가 되자 왕은 신하들에게 성기가 둘인 처녀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런 처녀는 없었다. 결국 왕자는 결혼도 못 해보고 이른 나이에 죽었다. 죽어서 감기 귀신이 된 왕자는 생전에 채우지 못한 욕망을 사람의 콧구멍에다 대신 풀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나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코를 풀면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감기 귀신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 옛날에도 자신에게 꼭 맞는 배우자를 찾는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어쩌면 감기는 외로운 사람이 더 잘 걸리는 게 아닐까?

감기 귀신이 지나다니다가 외로워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혹시 자신과 잘 맞는 짝인지를 시험해 보려고 그 사람의 코에 달라붙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로운 줄 모르며 살았고,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감기에 걸린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 같다. 올해 부쩍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더니 감기 귀신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덮친 것이 틀림이 없다. 앞으로는 감기 귀신에게 내가 외롭다는 걸 절대로 들키지 말아야겠다. 아니, 외롭지 않도록 내 몸과 마음을 살뜰하게 잘 챙기고 싶다. 재미있는 감기 귀신 설화 덕분에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일은 아들이 좋아하는 뜨끈뜨끈한 미역국을 끓여 오랜만에 그와 함께 할 생각하니 어느새 감기가 저 멀리 도망가는 것 같다.

 

이 순간에 외로우신 여러분,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