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헬렌송귀의 마음요리

딸에게 쓰는 필사책


오늘 내가 만든 습관이 내일의 나이다.

당신에게 내일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습관은 무엇인가?

 

스마트 폰 일상화로 음성통화 대신 문자를 하고, 키보드로 생각을 정리하는 효율적인 시대에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베껴쓴다’는 손끝 감각을 즐기면서 필사를 한다. 좋은 글귀나 시 또는 책 속 문장 그리고 고전과 성경을 쓴다.

 

필사는 나에게 글쓰는 일에 있어서 머나먼 목적지까지 이르게 하는 좋은 습관이다. 그 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달려갈 수 있는 즐거운 도구이다. 평소 편지나 메모를 즐기는 나에게 필사는 딱이다. 손으로 쓰는 동안 한 글자, 한 문장을 필사하면서 집중하게 된다. 흩어진 마음을 좋은 글귀에 비추다 보면 회복과 몰입감을 경험한다.

 

바쁜 세상 속, 숨 가쁘게 달려온 마음의 속도도 잠시 늦추며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마음이 혼미할 때 좋은 글귀들은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손끝 따라 써 내려간 문장들이 깊은 대화로 이끈다. 흩어진 생각들이 모여지고 언어 감각이 깊어진다. 좋은 글귀나 문장들이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에 머무른다. 때로는 도끼로 쪼개는 아픔도 감내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된다. 이때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필사의 힘을 느낀다.

 

평소 제한된 단어로 국한된 언어 사용이었다면 좋은 문장은 내 언어로 뿌리를 내린다. 자연스럽게 문장의 리듬이나 새로운 단어의 느낌을 체득한다. 언어 이상의 예술적 감성도 스며든다. 필사는 타인의 언어를 빌려 나를 돌보며 마음 챙김으로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한다. 이러한 좋은 점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딸에게 필사를 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좋은 필사책을 발견했다.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따라 쓰기도 쉽고, 나의 의견을 쓸 공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4월에 생일을 맞는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엄마의 마음을 담아 꾸준히 썼다.

 

벌써 10여 년 외국 생활하는 딸 아이에게 자신의 근황을 물어보면, “그런 거 뭘 물어요”라고 한다. 사생활 침해인가? 엄마인 나는 할 말이 점점 없어진다. 필사책 한 권으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기적을 꿈꾸며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한 권을 마쳤다. 쓰는 동안 마음이 정리되며 머리와 가슴 손끝까지 거리가 좁혀지며 깊은 치유적 행위가 있었다. 필사의 문장들이 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로 재창조되고, 작은 성취감에 딸을 향한 사랑으로 뿌듯해졌다.

 

필사를 마친 책을 들고 여고동창을 만났다. 친구가 학수고대하며 마련한 꿈의 별장으로 갔다. 곧게 뻗은 소나무 수십 그루가 어우러진 해변가 숲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하늘 높이 뻗은 솔잎 줄기 끝에서 땅으로 휘리릭하는 소리가 순간 울렸다. 귓속을 뻥 뚫기라도 하듯 쏜살같이 지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갈색 솔잎과 솔방울을 밟으며 연한 가루 같은 모래사장으로 중년 여인 둘이 걸었다. 태안 바다는 파도를 크고,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친구야, 이거 내 딸에게 줄 필사책이야. 우리 서로 오랜 친구인 너가 알고있는 나, 한마디 써 주라. 딸에게 엄마 절친이 누구인지, 친구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 딸이 바라든 아니든 내 마음이야. 써 줄 수 있겠지?”

 

나는 책 속 페이지 두어 곳에 공간을 두었다. 이 책이 완성되는 2025년 4월, 친밀한 나의 친구 몇 명, 한 문장씩 쓰게 하고 싸인을 받았다.

 

필사는 이렇게 단순한 글쓰기 이상의 의미를 담아낸다. 인지 기능을 자극하고, 정서적 안정을 돕고, 나를 성찰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다. 작금에 치매 예방에 치료적 요인으로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직접적인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제한적이나, 다양한 연구에서 손글씨 쓰기와 같은 활동은 뇌 자극과 인지능력 유지에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필사 한 권이 완성되면 작은 성공, 큰 희열과 자부심, 자그마한 활력들이 모여 쌓은 희노애락 인생탑이 된다. 반복되는 나의 작은 습관이 숨겨진 탁월함을 깨우는 행동이고 곧 나를 만들어 간다.

 

“좋은 글은 좋은 삶을 닮는다.”


 

홍헬렌송귀 작가

 

마음공감 코칭 & 심리상담센터장
학력 : 칼빈대학교대학원(심리상담치료학,상담학석사)
경력 : 현)한국푸드표현예술치료협회 이사 /분당노인종합복지관 상담사/ 용인시 교육지원청 학생삼담
저서(공저) : [자존감요리편 10인10색마음요리2] [시니어강사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