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결, 사람의 품 말은 언제나 사람을 드러낸다. 어투보다 의도가 먼저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단어보다 결이 먼저 다가오는 말들이 있다. 그 결은 종종 그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 최근 들어, 말을 듣는 일이 부쩍 피로해졌다. 의미 없는 말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심한 척 흘려지는 말, 정확히 무엇을 겨냥했는지 애매한 말, 감정은 담기지 않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찔리는 말들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그런 스타일은 요즘 잘 안 쓰지 않나?”, “그거 예전에 누가 했다가 잘 안 됐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좀 더 세련된 쪽이 좋지 않나 싶네요.” 말은 직접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엔 분명한 뉘앙스가 깃들어 있다. 누구를 향한 말인지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그 말이 방 안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듣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말을 내뱉은 사람보다, 그 말의 결이 먼저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단어보다 결에 반응한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이는 부드럽게 들리고, 어떤 이는 어딘가 날이 서 있다고 느껴진다. “괜찮아요”, “고생하셨어요”, “그럴 수도 있죠.” 이 짧은 말들조차도, 어떤 마음에서 나왔
공감 -마음 치유- 아픈 마음을 견디기만 해서 용량초과로 탈이 나는 것을 보면, 마음의 공간에도 용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흩날리는 벚꽃 잎 사이로 걷는 산책길, 시원한 카페라테를 마시며 언니와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봅니다. "언니야, 나는 어릴 적을 떠올리면 너무 어리숙했던 것 같아! 깨어있지 못해서, 미숙한 판단으로 아쉬운 일들이 많아. 제일 아쉬운 일은,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버려 둔 일 같아!” 마음이 다치면 숨어 있던 감정부터 시동이 걸리지요. 그때, 부정적인 감정들은 크기가 커지고, 힘이 점점 더 세져서, 좋은 감정들이 빛을 보지 못하도록 부정적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그 감정이 부정적인 생각과 만나 현란한 춤을 추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에도 병이 나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귀에 들리지 않는 아픔으로 채워지는 우리의 내면. "감정이 아픈 것을 근육통이라고 한다면, 생각이 아픈 것은 뼈가 아픈 것과 같다." - 윤홍균의 마음 지구력 본문 중에서 - “동생아, 난 삶의 작은 파동에도, 지난 일들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 같아! 억누르고, 참기만 한 감정은 내 마음속, 너무 깊게 숨어 있어서 찾을 수가 없어. 숨어 있는 감
두려움이 날개짓할 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한다. 두려움은 실패의 가능성과 상실, 관계에서의 상처, 낯선 환경 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움츠러들게 한다. 사실 두려움은 결코 우리가 피해야 할 감정만이 아니다. 이는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가장 원초적인 힘인데 말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생존을 위한 본능, 말 그대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삶의 용기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 즉 자세가 필요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고 키우려 노력한다. 사랑과 신앙으로 보듬으며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 양육에 온힘을 다해 애써도 아이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신앙은 불확실성 속에서의 도약’이라 케고르가 말했듯이, 도약의 발판인 신앙의 힘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든든한 믿음이 흔들거리기도 한다 네 살 된 아들과 손을 잡고 들판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아이가 어릴 적이다. 아이의 가느다란 손목을 번쩍 들어 올리면 껑충 건너뛸 수 있
그리운 진달래꽃 올해는 유난히도 봄이 늦은 듯하다. 훌쩍 다가온 4월에도 눈이 내리니 말이다. 갈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미련이 남은 듯한 겨울 총각은 자꾸 되돌아왔다 가기를 몇 차례인지 모르겠다. 한술 더 떠, 수줍은 봄 처녀는 서둘러 자리 잡지 않고 왜 이리도 기다리는 사람 애를 태우는지, 차가운 봄바람에 덜덜 떠는 새싹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나 역시 겨울 외투를 옷장에 넣고 빼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3월을 다 보낸 것 같다. 봄소식은 누가 뭐래도 푸릇한 새싹들과 울긋불긋한 꽃송이들이 제일 먼저 전해준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은 풀냄새, 흙냄새, 꽃향기를 싣고, 온 동네를 가득 메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상 기온 때문인지 봄소식을 전하는 순서들이 뒤죽박죽인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나라지만 지역마다 다른 일조량 때문에 꽃피는 시기가 조금씩 차이 난다고 한다. 정확한 순서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먼저 피는 건 매화꽃이라고 한다. 다음은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다. 해마다 요맘때면 기다려지는 꽃이 있다. 바로 진달래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다. 주로 산이나 들의 양지바른 따듯한 곳에서 높이는 2m~3m 정
조금 둔해지는 용기 요즘 사람들의 말이 조금씩 뾰족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어떤 이는 스쳐 들은 말에도 오래 머문다. 말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예전보다 더 쉽게 상처받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말끝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말을 왜 했는지, 어떤 의미였는지, 혹시 나를 무시한 건 아닌지, 혼자서 되묻고 되짚고, 결국은 괜한 오해 속에 마음의 선을 긋는다. 누구 하나 분명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관계는 어느새 멀어진다. 과민함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산물일 수 있다. 사회 전반의 긴장감, 불확실한 미래, 관계 안에서의 불균형은 사람을 점점 날카롭게 만든다.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고, 누구의 말도 쉽게 믿지 못하게 된다. 모두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말과 행동에 의미를 덧씌우기 시작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선의의 둔감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의도치 않은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굳이 해석하지 않는 자세. 때로는 그냥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넘길 수 있는 여유.
공감- 다름을 인정하기 “엄마는 바꿀 수 없데, 자식도 바꿀 수 없데. 근데, 어릴 적 엄마와 자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어린아이들이 더 일방적으로 상처받을 거야! 다름을 인정해야, 관계에도 건강한 애착이 만들어져. 지금에야, 그걸 알았지 뭐야.” 너무 공감되는 어느 친구의 이 말은 한동안 나의 마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 다를 수 있기에, 서로의 마음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새로운 일상을 도전하고 있는 저의 마음은 ‘불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낯선 환경에서 시작되었고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한 실력과 어떠한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안전하지 못한 욕구로 인한 감정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낯선 환경에 계속 노출되는 것, 처음엔 요동치던 심장의 박동이 점차 잔잔해지듯 익숙한 환경과 편안한 마음으로 바뀌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차가운 물에 들어갈 때 처음엔 온몸이 움츠러들지만,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작은 성공의 경험을 더 많이 쌓아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내면의 안전지대를 튼튼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허위·과장 분양광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허위·과장 광고를 이유로 분양계약을 취소, 해제하는 것이 가능한지 법률자문을 요청하는 수분양자들의 문의가 늘었습니다. 문제 삼는 허위·과장광고의 내용은 장래 분양건물 부근에 지식산업센터와 같은 인구밀집시설이 들어선다거나 지하철과 같은 교통망이 확충된다거나 전매를 보장한다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를 이유로 판례가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기망행위를 인정하여 분양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본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한 예로, 수분양자가 분양홍보관에서 분양상담사가 한 장밋빛 설명을 그대로 믿고 전매나 시세차익 약속을 받았다거나 임대수익이나 투자수익을 보장받았다는 등으로 주장하지만 막상 상담해보면 그에 대한 입증자료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히려 ‘분양계약서 상 명시된 사항 이외에 구두 또는 서면에 특약 또는 개별약정을 한 바 없으며 분양계약서상 권리 이외에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하지 않을 것을 확약함’, ‘담당 영업사원으로부터 전매알선 및 전매차익 보장, 수익률 보장 등에 관하여 별도로 약속받은 사실이 없음’이라는 기재가 담긴 상담내용확인서 등의 서류가 존재하는
모노레일 같은 인생 여행의 묘미는 무엇인가? 등산이라면 정상에 올라 한눈에 자연을 내려다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해 바다에 둘러싸인 강화도, 모노레일을 타고 화개정원을 지나 전망대로 향한다. 연산군의 유배지였고, 북한 땅이 보이는 그곳까지 가는 길, 천천히 오르는 모노레일에 몸을 맡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득 품고 창밖을 바라본다. 가파른 레일을 따라 올라가면서 전망대에서 펼쳐질 광경이 궁금해서, 의자를 끌어당기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할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한다. 목적지가 눈앞인데도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은 마냥 느리게만 느껴진다.. 청년의 삶이 그렇다. 목표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싶고, 높은 곳에 올라야 의미가 있을 것만 같다. 초조함과 설렘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린다. 정상에 오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믿으면서, 유리로 된 전망대 바닥을 차마 내딛지 못하는 동료에게 손 내밀고, 머나먼 타향이 된 북쪽을 바라본다. 지척의 거리들 두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에 감사한다. 인증사진을 남기며 하늘을 본다. 저 멀리 더 높이 독수리 두 마리가 짝지어 돌고 있다. 정상의 기쁨은 잠시, 오래 머무를 수 없다. 모노레일로 돌아오라는 소리가
늦잠 “좋은 아침입니다. 잘 잤어요?” 언제부턴가 아침 인사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대부분의 아침 인사는 밤새 잠자리가 편안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잠의 비중은 우리 삶에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잠을 잘 자고 나면, 에너지 넘치는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좋은 잠은 건강한 삶에 필요한 힘을 다음 날 아침, 가득 채워주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풍요의 시대, 먹을 것, 즐길 거리도 많은 요즘이다. 허나, 이상하게도 잠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면 부족으로 생기는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편안하게 잠든 날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잠드는 게 어렵다 보니, 잠에서 깨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난 기억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도대체 문제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난다. 서울 변두리 시내에서 살았던 우리 집은 아버지의 이직으로 학교에서 더 멀리 떨어진 산비탈 쪽에 있는 마을로 옮겨야 했다. 이사 전에는 학교까지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했는데, 이사 후에는 걸어서 5
그래서, 어쩌라고요? 살다 보면 마음이 툭, 하고 접히는 순간이 있다. 말 한마디, 그저 흘려듣자니 묘하게 거슬리고, 되묻자니 체면이 어색해지는 그런 순간. 가만히 앉아 듣고 있다 보면, 내 안에 조용히 단단해지는 선이 생긴다. 이 관계는 여기까지, 라는 작은 결심과 함께. 나는 나름 부드러운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더 따뜻하게 대하고 싶다. 굳이 감정의 불편함을 키우기보다는, 가능한 한 다정하게 마주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해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나를 존중할 때의 이야기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는 약한 사람에게는 부드럽지만, 강한 척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느 순간 단호해진다. 조용히 듣고 있다가도,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이나 태도를 마주하면, 내 안의 선이 단숨에 곧아진다. 평소엔 알아채지 못하던 나의 단단한 면이, 바로 그런 순간에 얼굴을 드러낸다. 얼마 전, 아이의 학업 문제로 상담을 받기 위해 어떤 선생님을 만났다. 신뢰하던 지인의 소개였기에, 나름의 기대를 갖고 방문한 자리였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이야기가 오갔고, 아이의 상태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조언도 이어졌다. 그런데 대화의 흐름과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