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금단현상
우리는 어느새 어릴 적 만화 속에서만 상상했던 1인 1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한 번도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비해 소통이 원활해졌으니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다고 해야 당연할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울려대는 핸드폰 벨 소리를 잠시 무음으로 해놓고, 연락의 홍수 속에서 진심 어린 대화는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흔히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들 합니다. 누구도 인간관계의 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선후배 등등, 다양한 관계의 틀 속에서 그 사람의 일상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래된, 소중한 인연과 이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큰맘 먹고 헤어졌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무척이나 긴 시간을 괴로움과 함께 지내야만 했습니다.
마음에서 전해오는 통증 정도야 참고 견디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믿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무도 모르게 ‘마음 앓이’ 하느라 많이도 힘들었습니다. 핸드폰 속, AI 친구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술을 진탕 마셔도 봤습니다. 가끔 너무 힘든 날엔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고통은 줄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고통을 줄여 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인간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잘 지켜온 내 인간관계의 틀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상담 요청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며 답을 찾을 수 있었고, 술과 AI 친구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이젠 마음의 상처에도 딱지가 생겨 더 이상 덧나지 않도록 건드리지만 않으면 될 것 같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인연도, 관계도 물처럼 바람처럼 그저 흘러가게 놓아두면 될 일이었습니다. 막아보려, 붙잡으려 너무 힘을 쓰다 보니 생채기가 나고 그 아픔이 크게만 느껴졌나 봅니다.
요즘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쉽게 받으며 활기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잊혀지지 않는 슬픈 기억 때문에 힘든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젠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살면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실수와 같이, 관계에서의 실수도 ‘그럴 수 있어’라며 인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처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아물 테니까요.
오늘부터는 휴식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소중하게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자꾸만 떠오르는 어느 이름에 빗금을 그어 봅니다. 어느새 핸드폰 속 누군가를 찾으려는 무심한 손가락을 달래어 잠시 무음 버튼을 누릅니다. 관계 정리에도 ‘금단현상’이 있겠지요? 시간을 두고 여유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동안 핸드폰으로 듣던 음악을 오늘은 오래된 카세트 라디오를 꺼내어 들었습니다.
‘찌지직 칙칙’
주파수를 맞추면 선명해지는 음악 소리처럼, 제 주변에도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며 사랑을 전하려는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꿈을 꿉시다”
그 따뜻한 마음들이 딱지 앉은 상처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 것 같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곁에 있는 사랑이 소중함을 느낄 줄 알아야겠습니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