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3막 시작 전 암전

 

라이브 판매 방송은 잠시 보류한다. 전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두 달 전부터 준비한 일이 따로 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처음 해보는 1인 창업이라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궁금한 건 너무 많은데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 요즘은 ‘유트브’에서 웬만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그래도 잠시만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부터 정리해보자.


나는 지금 인생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연극에 비유하자면 아직 3막이 열리기 전, 즉 암전 중이다. 막 뒤에 있는 배우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이 순간 관객은 2막의 여운을 느끼며 3막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캄캄한 무대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연극이 3막으로 끝난다면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므로 배우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초조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재치를 발휘하여 이 무대를 멋지게 마무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멋진 배우니까!

 

 

연극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종합예술이다. 연극의 3요소는 배우, 무대, 관객이다. 요즘은 여기에 희곡을 포함하여 4요소라고 한다. 나의 인생 2막은 연극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결혼 후, 살림하며 두 아들을 키우는데 진심이었던 평범한 전업주부였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내 시간이 생기니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 했던 직업은 일의 특성상, 회사가 서울 강남 쪽에만 모여있었고,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게다가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을 부모님이 맞벌이였던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외롭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마침 문화재단에서 홍보하는 ‘주부 연극교실-시민 연극배우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았다. 활동시간도 적당하고, 3개월 정도 공부하면서 연습한 후에 공연을 통해 결과를 가족들에게 보여 줄 수 있으니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17년이 지났다. 그땐 연극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 한번 깜빡이고 나니 사라진 봄날의 바람처럼 꿈 같은 세월이다. 돌이켜 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온통 꽃밭에 다녀온 것처럼 행복했던 추억들이 참 많다.


얼마 전, 갑자기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스승님이 돌아가셨다. 연극을 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여러 작품을 함께했던 추억이 많기에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2막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모든 활동이 일시 정지됐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흘러, 주변 상황은 태풍이 휩쓸고 간 듯 변해 버렸고, 정신 차리고 보니 원치 않는 3막이 시작되었다. 당황스럽고 버거웠다. 그러나 막은 올라갈 것이고 언제까지 당황스러워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대 위에 펼쳐질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시간과 돈을 내고 온 관객들이 있기에 배우는 움직여야 한다.

 

암전 중, 배우의 머릿속은 시간이 멈춘 듯,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길어야 1분, 배우는 3막의 최고 시나리오부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상해보고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자칫하면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에 오차가 생길 수 있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했다가는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와 연출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 막 저편에서 대기 중인 배우에게는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찰나의 시간에 상대 배우에게 ‘싸인’을 주고 또 허락의 ‘싸인’도 받아야 한다. 연극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극인들 사회에서 역시 가장 큰 능력은 인간관계이고, 배우들끼리의 소통능력은 꽤 중요한 연기력으로 인정한다.

 

지난 17년 동안, 많은 걸 가르쳐 준 연극 경험은 그 어떤 험난한 상황일지라도 잘 견뎌내고, 또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리라 믿는다. 내 인생의 3막은 내가 만들고 싶다. 2막의 흐름과는 다르게 새로운 조명과 음악으로 무대를 꾸미고, 내가 꿈꿔왔던 새로운 역할로 마음껏 무대 위를 달리고 싶다. 나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재치를 발휘하여 이 무대를 멋지게 마무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멋진 배우니까!


흔히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하는데 나는 ‘연극은 인생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는 함께 어울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내가 행복할 때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가장 행복한 최선을 선택하기보다는 함께 행복하기 위한 적당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참 많다. 그 선택을 가르쳐주고 경험하게 해준 연극을 나는 존경한다. 그러므로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은 인생이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