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의 마음길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대상을 찾아보세요.

위로 받고 위로해 주는 삶

 


 

아이를 키우는 과정, 정말 많은 주의가 필요하죠. 특히 어린 아이들은 고열이 나거나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늘 긴장되고요. 아이의 열감기로 병원에 가면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죠.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면, 모유나 분유를 끊어야 하는 시기도 와요.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모유나 분유 대신 물을 먹여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새벽에 딸아이가 울면 젖병에 물을 넣어 줬어요. 제 딸은 한번 울면 달래기 힘들고 1시간 정도를 크게 울었어요. 아침에 밥을 먹다가 딸아이가 경련을 한번 한 적이 있어요. 너무 놀라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가니 물을 너무 많이 먹었다고 했어요. 그때 물을 많이 먹어도 안 좋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 너무 놀란 마음이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았죠.

 

딸아이는 주사를 맞을 때도 너무 크게 울었죠. 어른들이 함께 붙어서 아이를 잡아줘야 했어요. 아이가 한번 울면 주변 사람들마저 정신없게 만들었거든요. 지금은 주사를 정말 잘 맞는 멋진 학생이에요. 그 당시 아이의 우는 날은 매일 온종일 있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아기 가수’라고 불릴 만큼 유명했죠. 그때는 다들 예민했던 시절이라 달래 지지 않는 아이의 큰 울음소리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죠. 미숙했고 무섭고 버겁고 힘들었어요. 체력은 바닥이고 받기만 했던 내가, 주기만 해야 하는 환경으로 변해있었죠.

 

그날도 저는 아이의 감기로 병원을 찾았어요. 진료실에 들어서니, 의사 선생님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죠.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선생님,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둘째를 낳아도 괜찮을까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선생님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이 엄마 왜 이러시지? 왜 이런 질문을 하시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어요.

 

그 순간 저 자신이 참 안타까웠어요. 왜 처음 본 의사 선생님께 둘째 낳아도 되나요? 물어봤을까요? 그때의 제 마음은, 처해있는 환경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점점 피폐해져 가는 모습에 나만을 위한 관심과 사랑을 원했나 봐요. 근데 주변 사람들은 더 힘들어 보였어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가볍지 않고, 더 부담스럽고 챙겨야 할 일들만 보였죠. 나의 마음 그릇은 작은데 계속 담아야만 하니, 벅차고 감당이 안 됐어요. 그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마음의 소리를 내지 않고 덮는 일이었어요. 사람들과 부대끼며 웃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난, 점점 마음을 풀지 못하고 쌓아만 갔죠. 나의 마음에도 고장의 신호가 오는 듯했어요.


정말 힘들 때, 속 깊은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나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내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 있나요?

자기 생각과 감정만 우선인 사람들만 곁에 계시는가요?

살면서 얼마나 위로받고, 위로해 주며 살고 계시나요?

절대적으로 나를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 줄 사람 있나요?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제자님

불완전한 인간은 평생 자신을 위로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지요.

인간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자기 밖의 어떤 것이 늘 필요한 존재고요.

대상을 내면화시키고 나아가 자기화 시키죠.

 

그 대상이 꼭 사람만은 아니에요. 인간의 놀라운 능력으로 동물, 자연 나아가 하늘과 같은 무생물에도 감정을 투여하고 인격을 부여해요. 마치 사람처럼 관계한다는 사실이지요. 심지어 공간, 브랜드, 추상적 관념, 상상 속의 존재에 대해서도 감정을 느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인간이죠. 일본에서 마네킹이나 캐릭터 인형과 결혼한 사례도 그렇죠.

 

유년기에 안정적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대상을 찾게 돼요. 그것이 지나치면 집착이나 중독이 되지만 적당하다면 삶의 상처와 결핍을 위로하는 중간대상일 수 있어요. 자기다움과 홀로서기를 촉진한다면 말이지요.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