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위로
어릴 때 좋아하던 문구가 있었다.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순간 짧은 이 말이 주는 위로는 나의 손을 따스히 잡아 주는 듯 친밀하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힘이 되었다.
나는 어쭙잖은 위로가 싫었다. “Don’t worry, be happy”처럼 성의 없고 무책임한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해결될 길은 안보이고 막막하기만 상황에서, 다 잘 될 거라는 식의 위로는 도움은커녕 그 답 없음이 무관심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타인의 상황을 온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조언이나 위로는 매우 조심스럽고도 위험한 일이다.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말들을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뱉어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동창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였다. 늦은 밤 교통사고는 단촐했지만 행복했던 세 식구를 한순간에 부숴 놓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초점 잃을 눈동자에 실신 직전으로 보였고 그녀 또한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보였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던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멍한 눈을 하고 있던 그녀는 사실 조금 떨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던지 친척으로 보이는 어떤 분이 그녀에게 다가와 호통치듯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 앞으로 엄마 챙기려면 네가 잘해야 해!”
누구나 고통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데 고통 앞에서 상대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니! 오히려 그녀의 아픔이 과소평가 되는 듯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연락을 받고 온 동창들도 그녀에게 저마다 한마디씩 위로를 건넸지만 그 말들이 적절한 것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넌 강한 애잖아. 너라면 이 시련도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격려의 의미라고 한 말이겠지만 그녀가 느끼는 부담이나 압박을 더 가중시키고 어쩌면 무력감마저 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너가 직장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우리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자”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위로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실제로는 현재 그녀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들릴까 염려되었다. 상대방이 느끼는 상실감이나 어려움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로 들리는 건 나뿐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제일 많이 들을 수 있는 위로지만 당사자에겐 지금의 고통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버거운데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은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질 거란걸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나는 이런 위로들이 겉으로는 긍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겉도는 말이라 당사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처만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이후 동창들과 연락을 끊었다.
공감과 존중이 없는 위로는 되려 상처만 남기는 법 아닐까.
위로란 고통이나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고, 아픔을 나누며,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따라서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진심으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하는 과정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우리가 할 일은 경청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듣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현실적인 접근이다. 막연히 긍정적인 말을 던지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네가 이 순간을 이겨 내도록 나는 이걸 도와줄게”와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시간과 공간의 제공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 또한 타인을 배려하는 위로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에게 큰 힘을 주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진정한 위로는 단순한 말로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또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당신의 진정한 말 한마디는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다시금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소중한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