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영의 마음공감

성공하는 사람, 기버(Giver)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 할머니께서는 나를 앉혀 놓고 말씀하셨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누구를 만나 건 상대방이 손해를 안 보게 하라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 꼭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게 내가 되도록 하라셨다. 그러면 적어도 척을 질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빌런(villain;악당)들 중엔 본인이 손해 보는 걸 끔찍하리만큼 싫어하는 이가 있다. 이들은 본인이 손해를 안 보는 지점에서 끝나지 않고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길 건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나의 숙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런 부류에게도 매번 내가 손해를 자진해서 본다면 나를 호구로 보고 이용할 것이 눈에 보이듯 뻔했기 때문이다.

 

호구가 되지 않으면서 할머니의 가르침을 이어가려면 기준이 필요했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고, 작은 손해는 내가 질지언정 타인을 위하고 베풀 줄 아는, 호인의 길을 가고 싶었다. 호구와 호인의 차이를 생각해 보니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는 가끔 쓸데없는 곳에 인내심을 쓸 때가 있다.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계속되는 부탁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리석은 관용을 베풀며 선 넘을 기회를 내어주면서 말이다.

 

앞서 말한 기준은 여기서 시작한다. 내가 행하는 호의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를 살피고, 단순히 남을 돕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기로 했다. 따라서 이 조건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호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즉, 기버(giver)가 되기로 했지만, 선택적 기버이며, 제한적 기버가 되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그의 책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 기버(giver)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챙기려는 테이커(taker)나 받는 만큼 주는 매처(matcher) 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기버들이 타인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기회와 지원으로 이어져 결국 크게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주는 것만으로 모든 상황에서 이기는 건 아니지만 상호 신뢰와 배려를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는 큰 성공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이처럼 신뢰야말로 핵심이 되는 성공 요인이라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타인에게서 신뢰의 기회를 얻기조차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는 사람인 “기버”가 되는 것은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된다. 이 신뢰는 기버가 나중에 필요한 도움이나 기회를 받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기버가 이기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협력할 의지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버에게 기회를 맡기거나 지원해줄 확률도 높아질 것 이다.


사회생활에 있어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많은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신뢰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정보나 기회를 먼저 제공하는가 하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단기적인 이득이 아닌 장기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신뢰받는 사람은 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 또한 높다. 결국 신뢰의 기회를 얻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공과 연결되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호구를 자청하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베풂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본인의 성공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곧 세상이 좀 더 잘 돌아갈 수 있는 윤활유가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을 돕되 자신을 잃지 말라”라는 격언이 있다.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자기 보호와 이타주의 사이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전제는 그것이다. ‘남을 도와라.’

 

조금의 손해와 조금의 희생이 오히려 나의 기쁨일 수 있는 선에서 기꺼이 베풀어보자.

그것이 곧 내게 행운과 성공의 열쇠를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