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의 마음길

아픔도 다리미로 ‘쫙’ 펴지기를 바라요

 


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추석 연휴 가족프로그램 예능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어요.

어머니의 나이 구십을 넘기고 치매가 찾아왔지만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 고우셨어요. 부부는 4남 1녀의 다섯 자녀와 함께 노래하는 가족이에요.

 

노부부가 함께한 세월이 칠십 년, 그러나 몇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셨죠. 그 이후 치매 증상이 좀 더 심해졌지만, 딸과 함께 평생 해온 노래를 부르며 옛 기억을 떠올리시더라고요.

 

그런 딸이 엄마를 향해 말해요.

‘나의 가장 힘든 순간을 위로해 주며,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신 엄마가,

딸에 대한 기억도, 함께 했던 그 소중한 순간도 기억하지 못하지요.’

“괜찮아요! 제가 엄마의 모든 것을 기억할 테니까요!”

100세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응시하며 삼십 년을 더 함께 살자고 말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정이 무뎌지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저 사람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깊은 정을 쌓았구나! 칠십 년 이상을 부부로, 오십 년 이상을 자녀와 엄마로 잘살아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지금은 치매로 음정, 박자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살아온 삶의 흔적을 노래와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죠.

 

노래에는 음정, 박자라는 규칙이 있잖아요. 내가 음치, 박치면 어때요. 평소에도 ‘기’죽지 말고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노래를 불러봐요. 그때 느껴지는 ‘흥’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잖아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

–임형주-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연기자들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 집중하며 작품을 만들죠. 그 이후,

내 역할의 캐릭터와 작별해야 할 때,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기분이라고 하신 분이 계셨어요. 모질게 떠나보내야 새로운 캐릭터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죠. 우리의 인생도 함께해온 깊은 애정의 캐릭터가 있다면 과감하게 떠나보내고 새로운 캐릭터로 삶을 만들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제자님

깊은 내면에서 진짜 내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요.

큰 사건이 터져보면 알 수 있어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이해해주고, 보이지 않는 배려와 사랑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면요.

참 감사한 내 사람이고, 내 인생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죠”

 

다리미로 구겨진 옷을 ‘쫙’ 펴듯이

모든 사람의 고민, 아픔도 다리미로 ‘쫙’ 펴지기를 바라요.”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