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진달래꽃
올해는 유난히도 봄이 늦은 듯하다. 훌쩍 다가온 4월에도 눈이 내리니 말이다. 갈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미련이 남은 듯한 겨울 총각은 자꾸 되돌아왔다 가기를 몇 차례인지 모르겠다. 한술 더 떠, 수줍은 봄 처녀는 서둘러 자리 잡지 않고 왜 이리도 기다리는 사람 애를 태우는지, 차가운 봄바람에 덜덜 떠는 새싹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나 역시 겨울 외투를 옷장에 넣고 빼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3월을 다 보낸 것 같다.
봄소식은 누가 뭐래도 푸릇한 새싹들과 울긋불긋한 꽃송이들이 제일 먼저 전해준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은 풀냄새, 흙냄새, 꽃향기를 싣고, 온 동네를 가득 메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상 기온 때문인지 봄소식을 전하는 순서들이 뒤죽박죽인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나라지만 지역마다 다른 일조량 때문에 꽃피는 시기가 조금씩 차이 난다고 한다. 정확한 순서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먼저 피는 건 매화꽃이라고 한다. 다음은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다.
해마다 요맘때면 기다려지는 꽃이 있다. 바로 진달래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다. 주로 산이나 들의 양지바른 따듯한 곳에서 높이는 2m~3m 정도까지 자라며, 연분홍색의 꽃이 가장 많다. 새순이 돋아나는 시기에 가장 먼저 피기 때문에, 먼 곳에서도 고운 색의 꽃 무리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부르는데, ‘두견새가 토한 피로 물든 꽃’이라는 이름은 ‘두견새의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 두견새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221) 말기의 촉(蜀)나라에서는 ‘망제(亡弟)의 넋’이라고 했다는데,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이산 저산 옮겨 다니며 피를 토 할 때까지 밤낮으로 처절하게 울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 진달래에 관한 기억이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서해안 바다마을에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여섯 살이었고, 마침 군대를 막 제대했던 삼촌이 아빠에게 농사일을 배우느라 같이 살았었다. 마을에서는 봄이 오면 집집마다 묵은 문풍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창호지로 단장하곤 했었는데 우리 집 방문은 다른 집과 달랐다. 방문에 실제로 진달래꽃이 만발한 나무가 있는 것처럼, 실감 나게 꾸몄기 때문이다. 삼촌은 진달래 꽃잎을 문풍지에 가득 붙이고 꽃잎들 사이사이에 나뭇가지 모양을 크레파스로 그려가며 진짜 진달래 나무처럼 정성껏 꾸몄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와서 감탄했다.
“아이고 예뻐라. 이 집은 화가가 사시나? 어쩜 이리도 솜씨가 좋아?”
“살아있는 진달래 나무처럼 잘 꾸몄네”
”이 집 총각, 요즘 연애하는 거 아냐?“
”솜씨 좋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인은 누굴까?“
”부럽다. 부러워“
그럴 때면, 수줍어하는 삼촌의 얼굴이 진달래 꽃잎처럼 빨갛게 달아올랐었다.
삼촌은 문풍지에 붙일 진달래 잎을 따러 갈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갔다. 그리고 다른 손은 삼촌의 여인이 잡고 있었다. 삼촌의 여인은 항상 새우깡 두 봉지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왔었다. 한 봉지는 진달래 꽃잎을 따는 동안 셋이 같이 먹었고, 다른 한 봉지는 내 차지였다. 삼촌은 비밀연애를 위해 어린 나에게 새우깡으로 거래한 것이었다. 동네에는 삼촌의 연애에 관한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나는 동네 어른들이 떠도는 소문의 진실을 궁금해하는 동안 근질근질했던 입을 새우깡으로 달래며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삼촌은 그 여인과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 잘 살았다. 지금은 작은아버지가 된 삼촌도 진달래꽃을 보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아직도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그 시절 삼촌이 남몰래 사랑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한껏 묻어 있는 진달래꽃이 참 그립다.
요즘은 진달래꽃이 많이 줄었는지 예전처럼 흔히 보기가 어려워졌다. 봄소식을 가장 빨리 전해주던 진달래의 소식이 몇 해 전 하늘로 가신 삼촌의 안부만큼 궁금하다. 수줍음 많은 봄님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마음 다 타버리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 손잡고 봄꽃 축제를 즐기고 싶다. 올해는 제발 봄은 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만끽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