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로 시작하는 이 칼럼 시리즈는 지방의 인구 위기와 이주 정책이라는 문제를 단순한 숫자나 제도적 해석을 넘어, 삶의 맥락과 공동체의 윤리에서 다시 묻는 류형철 박사의 기획 칼럼 시리즈이다. 총 30편이 넘는 본 시리즈는 ‘이주 사회 디자인’을 주제로, 광역비자·정주 지원·이민 거버넌스의 문제를 한국 사회와 지방 정부의 현장에서 풀어낸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을. 비자가 아니라 정주를. 체류가 아니라 공동체를"이 칼럼은 그 모순을 넘어 공존의 사회설계를 제안합니다. [편집자 주] 시리즈 제목은 아래와 같다. Part 1. 메인 시리즈: 『우리는 누구를 받아들였는가』 (001–022) 〈프롤로그〉 새로운 정부와 지역의 반란을 위한 이주 사회 디자인 제1화 뜻밖의 나라 제2화 머물기인가, 체류하기인가 제3화 비자에도 계급이 있다 제4화 고향을 선택한 사람들 제5화 체류 말기에서 공동체가 시작된다 제6화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제7화 지역은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가? 제8화 우리는 누구를 기반으로 했는가 제9화 정책은 여전히 혼자다 제10화 ‘정주’라는 단어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회복력의 다른 이름은 일상이다 특별한 날은 인생을 바꾸지만, 평범한 날은 인생을 지탱한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상태’를 떠올린다. 위기를 기회로, 상처를 성숙으로, 무너짐을 비약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실제 삶에서의 회복은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으며, 때로는 너무 평범해서 대단하지 않게 보이기까지 한다. 병을 앓고 난 뒤의 완치는 통증 없는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고,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의 회복은 단지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약속한 시간에 어딘가에 도착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위로라는 말이 무력하게 느껴질 만큼 지쳐 있던 날들 속에서도, 그날을 그냥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견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회복력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심리학을 넘어 교육, 경영, 심지어 자기계발서 속에서도 흔히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어떤 실패에도 꺾이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다시 일어나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나아지라고. 하지만 그 회복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너무 낙관적으로 소비되는 느낌도 든다. 마치 우리는 반드시 어떤 상실을 발판 삼아 더 단단해져야
소풍, 서울로 가보실래요? 서울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KBS 라디오 방송 녹화를 위해 대구에서 서울을 방문하게 되신 스승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글쓰기를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에게는 저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부터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한 줌 수업이 활성화되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도 일대일 매칭 수업이 편해졌기 때문이죠. 지난주 수업 시간에 스승님의 서울 방문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저녁밥을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스승님께서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고,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다른 제자 두 분도 마침 시간이 되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네 사람의 약속이 정해졌습니다. 평일 저녁, 3시간의 번개모임, 어쩌면 짧은 시간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풍 전날처럼 모두가 설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소중한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함께 할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몇 년 전, 국민학교 단짝이었던 친구들과 개나리가 활짝 피었던 봄날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작은 변화에 반응할 줄 아는 마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군가 놓고 간 젖은 양산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마르고 있는 그것은 마치 계절이 바뀌었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커피가 덜 따뜻하게 느껴졌고, 출근길 셔츠 소매가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다. 나무는 훨씬 짙어졌고, 퇴근길에는 바람보다 아스팔트의 온도가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아, 계절이 바뀌고 있었구나. 우리는 대부분 어떤 변화가 이미 한참 진행된 뒤에야 그것을 인지한다. 나무는 어느새 잎을 틔웠고, 해는 늦게까지 지지 않으며, 밤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 모든 변화가 배경처럼 흐려진다. 사소한 징후들이 실은 삶의 리듬을 이끄는 전조였다는 걸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렇기에 계절을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어쩌면 아직도 살아 있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종종 감각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계절의 결을 정확히 기억한다. 새 학기 교실의 공기, 여름 장마의 냄새, 선풍기 옆에 길게 누워 있던 오후의 소리. 그러나 이제는 ‘덥다’, ‘춥다’ 같은 기능적인
나에게 들려주고픈 말 몸이 아픕니다. 이번에는 빨리 회복되지 않네요.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나아지지 않으니 성급한 마음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처음엔 몸살감기처럼 기침이 심하고 온몸 여기저기가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아 왔습니다. 한동안 의사 선생님의 당부대로 따듯한 물을 자주 마시며 푹 쉬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나를 돌보는 시간. 처음 가져보는 기회입니다. 때로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아프면서 알게 되었지요. 어릴 적엔 모르는 것들뿐이라 보고 배우느라 바빴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감당해야 했기에 정신없이 20대를 훌쩍 흘려보냈고요.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엄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라는 이름은 처음 짊어지는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이었습니다. 책을 뒤져가며 아이를 키우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도 참고하면서 그렇게 30대, 40대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몸이 약했던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방학 때마다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얌전한 성격에 몸이 약했던 큰애
-공감- 마음의 온도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 누군가의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 의미 없이 들렸던 이 한마디가 그날따라 사람을 살리는 소리처럼 들릴 때 말이지요. 초등학교 때 마음이 아픈 건지, 머리가 아픈 건지 잘 느끼지 못했던 그 날, 누군가 내가 아픈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젖은 수건을 이마에 대고 누워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표현이 서툴기도 하지만, 표현한다고 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적에는 혼자 마음 앓이를 해도 체력이 좋아서 다음날 활짝 웃음이 나왔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마음의 피로가 고스란히 몸의 피로가 되어, 체력이 좋지 못한 날에는 몸도 마음도 함께 앓게 되는 듯합니다. 아집과 고집으로 내 생각의 틀에 갇힌 나에게도, 누군가 다가와 같은 틀 안에서 함께 공감해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다들 바쁜 하루 일상에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달래느라, 상대의 마음을 챙기는 일은 점점 인연의 끝처럼 멀게 느껴집니다. 해보지 못 한 일들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보던 날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려봅니다.
오늘도, 중요한 건 태도 세상은 점점 냉소적으로 흘러간다. 진심을 다하면 ‘순진하다’고 하고, 선의를 베풀면 ‘계산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돕는 이의 손길에조차 의심의 그림자가 덧씌워지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진심보다 ‘뒷배’와 ‘능구렁이’가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진심은 촌스럽고, 다정은 피곤하며, 예의는 약한 사람의 도구처럼 취급받는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말한다. “어차피 그래봤자 안 통해.” “내가 왜 먼저?” “괜히 상처만 받아.” 그리고 냉소의 방패를 들어 올린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정말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일까. 세상이 날이 설수록, 우리는 그보다 더 단단하고 성숙한 태도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가장 냉소적인 사람은 대개 상처 입은 사람이다. 믿었던 것에 배신당했고, 다가갔던 만큼 밀려났고, 무언가를 바랐다가 좌절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 그 기억의 잔해들이, “나는 다 알아. 다 겪어봤어. 그래서 더 이상은 기대하지 않아”라는 말로 변한다. 그 말은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아주 깊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숨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 그리고 그
-공감-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는 일 고요한 시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봅니다. 요즘 내 모습의 안과 밖은 안녕한가? 자신의 단단한 틀을 깨고, 틀 밖으로 나오는 일, 보여지는 화려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잘 찾아내고 있는지를 나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 다양한 모습 중, 어떤 풍경들이 시선을 멈추게 했니? 그 풍경을 보면서 무슨 감정들이 너를 찾아왔니? 즐겁고 자유롭게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면세계에서도 자신을 잘 보살피며 자유롭고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창한 어느 오후, ‘마음아, 아직 힘드니’들 들고서, 사인받고 싶다며 찾아온 지인들과의 만남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책 받자마자 바로 다 읽었어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저는 무언가 따뜻한 것이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가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조용히 미소 짓는 또 다른 친구의 말에는 오랜 시간 함께해온 우정의 깊이가 묻어났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며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같은 여행지를 다녀와도 각자 특별한 추억의 기억이 다르듯
아플 때마다 생각나는 나의 외할머니 오랜만입니다. 종일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어야만 했던 날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마냥 좋은 날은 아닙니다.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죠. 반갑지 않은 그 손님은 바로 몸살감기입니다. 밤사이 온몸이 쿡쿡 쑤시기 시작하더니 아침부터는 오한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가 속은 울렁거리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늦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내 몸도 열이 올랐다 내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잠옷은 온통 땀 범벅으로 꿉꿉해졌습니다. 몸이 쉬라고 애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내 몸아. 오늘은 푹 쉬자.” 미리 정해진 약속들이 있었기에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일정을 미루기 위해 전화합니다. 전화를 끊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몸을 위해서 잘했다고 애써 위로해 봅니다. 워낙에 급한 일부터 해치우는 성격으로 오랫동안 몸을 부려 왔으니 탈이 날 만도 합니다. 이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웬만해서는 정해진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몸이 갑자기 아픈 날이 잦아지니 스스로 마음에
중요한건, 여전히 과정이다. 요즘은 누가 “열심히 해요”라고 말하면 괜히 위축된다. 칭찬처럼 들려야 하는 말인데, 듣는 순간 어딘가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지금 충분히 안 하고 있나’, ‘조금 더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예전에는 그 말이 응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숙제가 되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제 목표가 아니라 압박이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결과가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에선 더 그렇다. 아무리 애써도,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애쓴 것조차 지워진다. 그렇게 열심이라는 말은 점점 고립된 감정이 된다. 예전엔 열심히 한다는 말에 자부심이 있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과정 자체가 의미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결과가 모든 것을 정의하고, 과정은 “그러니까 뭐가 됐는데?”라는 말 앞에서 무력해진다. 노력은 입증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열심히 했어요’라는 말은 이제 변명이 되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말은 오히려 게으름처럼 취급된다. 그건 시대가 바뀐 게 아니라, 믿음의 구조가 무너진 결과다. 이제는 누구도 과정만으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