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좌충우돌 인생 3막

행복,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는 물감


작은 녀석은 포대기로 둘둘 싸서 업고 큰 녀석 손을 잡고 반대쪽 어깨엔 아이들 분유통과 기저귀를 담은 가방을 둘러메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아들들은 처음 타보는 고속버스가 신기했는지 달리는 다섯 시간 동안 신나게 웃고 떠들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결국 터미널에서 본가로 들어갈 때 나는 두 녀석을 등에 업고 가느라 허리가 휘는 줄 알았습니다.

 

장사에 지친 시댁 식구들은 갈수록 눈이 퀭하고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며칠간 틈틈이 일을 도우며 눈치를 살펴보니 아버님이 버는 돈을 나누지 않고 몰래 감춰두는 항아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이유는 우리 가족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그 당시 나는 남편에게 살짝 말했습니다.

 

“매일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 오지만 이곳에 행복은 없어. 우리의 행복은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면 어떨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이 무척이나 든든하게 보여졌습니다. 다음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무엇이든 늘 함께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행복의 날들이 시작되었답니다. 남편은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했고, 나는 부족한 살림이지만 알뜰살뜰 절약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늙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이름으로 학원을 차리고 집도 샀습니다. 나도 꿈꾸던 여러 가지를 공부하면서 자격증도 많이 땄습니다.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만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랜 침묵이 베여있는 듯한 슬픔이 목을 조여 왔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꼈을 때, 이미 우리 부부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집의 대출금을 마지막으로 치르고 난 후부터 남편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아무도 몰래 혼자 가족으로부터 탈출을 준비하느라 마음의 문을 닫았고, 비자금 통장을 만들었고,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혼자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고 배신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랫동안 힘들었을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했습니다. 평생의 짝이라 생각했던 사람을 마음에서 내려놓는 일은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큼이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움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도 살고 그 사람도 살리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론으로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상실감이 조금씩 누그러지자, 다행히도 그 사람을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도 다른 방식의 행복을 찾을 기회가 온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목표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독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한 번씩 모여서 밥 먹는 시간을 갖습니다. 식사 후엔 차를 마시며, 지난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도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둔 슬픔을 꺼내지 않습니다. 짧지만 소중한 이 시간, 자주 가질 수 없기에 전보다 더욱 애틋한 걸까요? 더 많이 웃고, 더 행복하기 위해 모두 애쓰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는 물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의 반댓말은 불행이 아닐 수 있다.

 


 

윤미라(라떼)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주요활동]
스토리문학 계간지 시 부문 등단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시니어 극단 울림 대표
안산연극협회 이사
극단 유혹 회원
단원FM-그녀들의 주책쌀롱 VJ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