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의 초콜릿 칼럼

Burn Bridges


“Burn bridges” – 관계를 단절한다.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무모한 짓을 한다.

 

이 숙어는 군사적 전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군대가 강이나 협곡을 건너고 난 뒤에, 뒤따라오는 적군의 추격을 막으려고 다리를 폭파해 버리는 것입니다. 또는 다리를 태워버려서 불리한 상황에도 군대를 후퇴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 싸우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비지니스나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bridge”는 “다리”라는 뜻인데, 다리는 한쪽과 다른 한쪽을 이어주지요. 그래서 직장 상사와의 관계나 개인 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burn”은 “태운다”라는 뜻입니다. 그저 “망가뜨린다”라는 뜻의 “break”보다 더 강렬한 표현이지요. 다리를 아예 태워버리듯,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을 그만둘 때 상사나 동료에게 그동안 쌓였던 좋지 않은 말들을 모조리 내뱉어 버리고 관계를 완전히 태워버린다면 어찌 될까요? 다시는 그 사람들과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친구와 다툴 때도 심하게 화를 내고 절교해버리면 그 관계는 되돌리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Burn bridges”는 후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경고하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Mom : Did you finish your homework today?

오늘 숙제 다했니?

Child : No, I didn’t feel like doing it.

아니요. 별로 안하고 싶어서요.

Mom : Don’t burn your bridges. You still have time to fix it.

후회할 짓을 하지마. 아직 숙제할 시간이 충분해.

 

어느 주말, 해가 저물기 전까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정하가 눈이 빨개져 울며 들어옵니다. 정하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저의 큰아이입니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웅얼웅얼 알아듣기도 힘든 말로 하소연을 합니다. 가만 귀 기울여 들어보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다툰 것 같습니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간식으로 만들어놓은 딸기라떼를 손에 쥐여주며 진정시켜봅니다. “정하야, 무슨 일이 있었니? 엄마에게 말해볼래?”

 

시원한 라떼를 마시고 속이 진정된 아이가 사정을 늘어놓습니다. 미끄럼틀에서 잡기 놀이를 하던 중에 친구와 다리를 세게 부딪혔는데 친구가 사과하지 않아서 너무 속이 상한다고 합니다. 감정이 커진 만큼 부딪힌 다리의 아픔도 더 컸든지 연신 부여잡고 “다시는 친구랑 놀지 않을 거예요! 우리 친구 사이도 끝이에요!”라고 합니다.

 

저는 조용히 듣고 나서 정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정하야, 엄마가 'burn bridges'라는 표현을 너에게 알려줄게. 그 말은 다리를 태운다는 뜻이야. 다리를 태워버리면 우리가 강을 건너서 다시 돌아올 방법이 없어져 버리지.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감정에 휩싸여 친구와 다투고, 그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게 돼.

 

정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친구가 곧바로 사과하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잔뜩 화가 난 채로 섣불리 그 친구와의 다리를 태우는 행동을 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어."

 

정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물었어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먼저 친구에게 너의 속상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 그리고 친구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솔직하게 대화하다 보면 오해가 풀릴 거야.”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정하는 내일 학교 가는 길에 친구와 이야기해 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친구와 다시 놀고 싶었고, 다리를 태우지 않고 관계를 다시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다음날, 학교를 마친 정하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엄마를 부르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엄마, 엄마, 사실은 친구가 어제 너무 신나게 노느라 나랑 부딪힌 거도 몰랐대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서 그냥 화해했어요. 화부터 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 싸우지 않고 해결되어서 너무 기뻐요.”

 

아이가 한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우정의 다리를 불태워버렸다면 어땠을까요? 분명 다음에 그 다리를 다시 건너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후회와 아쉬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정하는 이번 경험을 통해, 그저 다리를 불태워버리는 것만이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걸 배웠을 거예요. 친구와 우정의 다리 한중간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더 건강한 방법을 찾은 셈이지요.

 

“Even when you’re upset, avoid burning bridges with your friends.”

속이 상해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지는 말아야 해.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