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송귀의 마음요리

나는 누구인가


 

“쏟아진다! 쏟아져! 넘친다! 넘쳐!“

복주머니가 완성되자 자신에게 외쳐봅니다.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린 것들로 채워진 주머니가 팽팽해지자 다시 흘러내리도록 비스듬히 기울였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복주머니!"

복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이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도록 비워질 때 비로소 가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떠한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만족한 복주머니를 보니 행복했습니다.

 

무엇 하는 걸까요?

요리사가 아닙니다.

푸드는 이제 요리의 대상만이 아니라 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마음 여행 도구입니다.

 

”너는 누구니?“

침묵 가운데 도마 위에 놓인 두부 한 모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썰고, 주무르고 으깨어서 물기를 꼭 짰습니다. 아기 오줌만큼 찔끔찔끔 나올 때까지 오른손 왼손으로 꾹꾹 눌러 모양을 만들어 복주머니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것은 쏟아져 내리는 축복과 사랑을 받는 주머니가 되었고, 가득 채워지자 이어서 흘러내리고 다시 채워지고 또 비웁니다. 바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한 삶이고 가치입니다. 잠시 하늘로부터 이때껏 받은 복을 세어 봅니다. 살아온 숫자 보다 몇 백 배는 훨씬 넘쳤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목마르게 갈구하는 모습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렇게 많은 복들이 채워지면 나누고 비우리라는 마음과는 달리 가득 찬 주머니를 움켜잡고 혹여 쏟아질까 안간힘을 씁니다. 바닥까지 빈 주머니가 헐렁하게 되었을 때는 조금만 채워져도 가슴이 벅찼건만 입구까지 차오르자 사정없이 끈을 꽁꽁 묶어버립니다. 비췻빛 접시 위에 표현한 작품과는 아주 상이했습니다. 나의 이 아이러니한 모습을 직면하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반문해봅니다.

 

나에 대한 의구심과 탐색은 반평생 살아온 후에야 심리학 공부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이 많은 사람을 이해하며 행복하기 위한 기초 학문으로서 사랑에 바탕한 사회적 관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 아들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맞서서 상식적이고 건강한 심리학을 주창한 바로 개인심리학입니다. 그의 저서 <미움받을 용기>로 대중에게 긍정의 사람, 용기의 사람, 겸손의 사람으로 친숙하게 알려졌습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의 생전에 어떤 기자가 “당신의 이론은 너무 쉽고 평범해서 상식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라고 질문하자 아들러는 “그렇다면 저는 성공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심리학이 학술적이고 독단적이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행복하기 위한 기초 학문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삶을 건강하게 가꾸는 것입니다.

 

저 또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푸드표현 상담 전문가로서 ‘인간은 누구나 온전히 기능하는 완전체라 믿으며 그들 안의 잠재력을 깨워 자기다움을 찾게 하리라’는 뜻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저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에 바쁜 나날로 보냈습니다. 타인의 욕구와 상황은 제 온몸의 세포까지도 알아차리면서 정작 자신은 파악이 안 됐던 것입니다. 사는 대로만 열심히 사는 내가 없는 유령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면서 산 것입니다. 불혹의 나이가 지나고서야 과연 나는 누구일까 하는 의구심에 틈을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나를 알고 나다움을 찾기 위한 탐색에 집중했지만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온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연유로 자책하는 소리였습니다. 타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다그쳤던 것입니다.

그러니 저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궁여지책으로 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게서라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에게 비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내면의 거울에 비친 나를 더 잘 통찰하고 있을 지인 여러 명에게 저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편안하고 부드럽고, 여유롭고 느긋한 포용력 .”

“차분. 끈기 내공. 순발력. 외유내강 소유자이죠.”

“스펀지 같은 사람”,무엇이든 흡수하고 흠뻑 젖으면 거침없이 흘러내려요.”

그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면전인지라 모두 긍정 피드백입니다.

그러할지라도 그 말들을 수용하며 공감하자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수용할 수 없는 것도 분명 있지만 그대로 수용하고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주머니 안에서 숙성시켰습니다. 곧 적재적소에 쏟아낼 것이니까요, 스펀지처럼.

“슬금슬금 톱질하세~ 복 나와라. 뚝딱 뚝딱.

쏟아진다! 쏟아져! 복 나와라 뚝딱뚝딱!

넘치도록 흘러 흘러!” 흥부가의 박타는 넉넉한 모습이 스쳤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축복과 사랑을 받은 복주머니는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요?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도 이미 차고 넘치도록 자신 안에 감춰진 복주머니의 보석들을 펼치셔서 하나씩 빛을 발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제 자신을 믿고 바라는 바를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온전히 기능하는 복주머니로 인해 마음은 다독여지고 힘이 솟았습니다. 그러자 김밥을 말려고 준비해둔 단무지와 당근이 나의 시선에 꽂혔습니다.

단무지의 노란빛은 동심의 세계로, 내가 좋아하는 당근의 주황빛은 새 에너지가 되어 도마 위에서 반짝거렸습니다. 단무지를 채 썰고 곱게 다지면 칼끝을 지나 새콤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질거립니다. 노랑, 주황의 조그만 알갱이들이 새싹이 되고, 봄 아지랑이처럼 올라와 보입니다. 채친 당근은 빗살 무늬로 가지런히 펴니 노랑 개나리 나무가 연상됩니다. 이리저리 세워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가운데 드디어 꽃이 피었습니다.

한참이나 노랑과 주황빛을 바라봅니다.

새벽녘 일출하는 태양처럼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거무스레했던 푸른빛 바다를 불그스레하게 서서히 물들어가고 어느새 붉어진 둥근 원형의 자태가 바다에 반사되었습니다. 가슴에 찬란하고 영롱한 빛으로 맞이합니다. 태양의 붉은빛이 더 붉고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검푸르던 바닷물까지 붉게 물들인 때문이리라. 동이 트면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 연출되고 곧이어 빛들은 바다에 온통 스며들 것입니다.

아지랑이 싹이 트다 나무가 되다 만개한 꽃나무

“그래 나는 물이다.”

어떤 물체이든 비춰 물들이는 그 빛은 내 안에서 솟구치던 타인을 향한 마음으로 물처럼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빛에 반사되어 푸른 바다가 되었고 붉은 바다도 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바로 내 앞에 선 타인, 내담자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촉진자이며, 상담자가 되어 즐거웠습니다. 푸른 대낮엔 파란 쪽빛처럼 청아한 물이 되고, 찌푸린 흐린 날에는 회색빛 그리고 붉게 물든 일출과 일몰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뤄 붉게 붉게 뿜어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푸드 매체로 표현된 작품 안에서 무의식이 심상으로 다가와 치유의 단서가 됩니다. 삶의 활력 에너가 되고, 푸. 놀. 치(푸드와 놀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푸드 마음 여행은 상담 현장에서 촉진자의 전문성과 자신의 근성을 따라 내담자와 같이 춤을 춥니다. 내담자 안에서 숨겨 잠자고 있던 보석들이 복주머니처럼 술술 풀어지리라는 믿음으로 나눈 몇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복주머니- 표현활동 설명]

두부는 부스러지기 쉬운 매체이지만 손에서 자유롭게 조형 활동이 가능합니다. 부드럽고 유연함이 나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손바닥 안에서 굴려 동그랗게 빚은 새알들을 복으로 상징하고 주변에 배치합니다. 초록 브로콜리를 잘게 썰어 행운의 네잎클로버로 윗부분을 장식하고 우측엔 복주머니, 좌측엔 필요한 적재적소들, 곧 사람 또는 기관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한민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