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 다시 시작하는 용기 매년 반복되는 의식, 새해 다짐 1월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새해 다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해의 목표를 세우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헬스장 등록률이 급증하고 다이어리와 계획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이 시기의 흔한 풍경이다.그러나 이런 열정은 대개 작심삼일로 끝난다. ‘올해는 꼭 다르다’며 힘차게 출발했던 다짐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흐려지고, 원래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일쑤다. 그렇다면 매년 반복되는 이 의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새해 다짐은 단순히 새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한 해 동안 쌓였던 후회와 미완성된 일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재정비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고, 더 나은 삶을 만들고자 하는 희망의 선언인 셈이다. 다짐이 단순히 의욕적인 시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질적 도구가 되려면,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접근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다짐이 실패하는 이유: 목표 설정의 함정 많은 사람들이 다짐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막연한 목표를 세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열심히 해
물방울 속 세상 쉼을 위해 제주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이 하시는 감귤밭을 찾아가던 길에 우연히 김창열 미술관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화가는 물방울 그림 작품을 많이 남겼다. 처음 작가의 그림을 마주했던 때는 투명한 물방울처럼 순수했던 20대 초반이었다. 가난하던 사회 초년시절, 단풍이 예쁜 계절마다 과천에 있는 놀이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들러 동심에 젖어보곤 했었다. 돌아오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들러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는 나름의 사치를 누리곤 했었다. 그때 만난 그림 속 물방울과의 조우는 학창 시절 화가의 꿈을 키웠던 소녀의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이슬방울처럼 다가왔다. 김창열 화가는 1929년 12월 24일에 태어나 2021년 1월 5일에 별세했다. 초기에는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을 그리다가 1970년대부터 물방울을 소재로 다루면서 ‘물방울 작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의 물방울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 해외 미술계에서도 미학적 논의와 관심을 일으키며 한국 현대미술의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프랑스)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지요. 내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고 상대의 마음속에 내가 살고 있을 테니까요.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있으신가요? 바쁜 일상에서도 마음속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은 나를 미소 짓게 해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마음껏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무엇인가를 사랑할 때, 마음은 따뜻해져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일탈, 사랑하는 여인과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은 행복이라는 글자에 예쁜 색깔을 입혀주지요. 사랑할 때, 사랑을 고백받은 날 기억하시나요. 연애가 시작되기 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심장이 뛰고 설레고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벅찬 기분요. 그의 따뜻한 온기로 내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죠. 그날은 그와 함께 시작되는 첫날로 새로운 꿈을 꾸며 행복하잖아요.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많이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미소 짓고 있을 때, 그 순간의 함께 하는 사람과 환경을 기억하며 마음껏 즐겨 보시고, 주변에 그 행복
인간사, 과연 그러한가? 과연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일까? 평생 처음, 온 가족이 팔순 잔치를 기념하며 떠난 여행이 영면의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안공항 사고 비행기, 179명의 사망자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충격에 오열하고 있다. 마음 한구석 날카롭게 후벼 파는 아픔으로 온 국민과 함께하는 깊은 애도 속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생각조차 두려운 일이지만, 지구촌에 심심찮게 일어나는 재해와 인재 소식을 접하면서 심기일전한다. 지진, 태풍, 화재, 전쟁 같은 크고 작은 비극들이 세상을 끊임없이 뒤흔든다. 이번 항공사고로 인해 가족 동반 여행을 주저하거나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이치를 떠올리면서, 기쁨과 슬픔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세상살이에 좋은 일이 찾아왔다 싶으면 슬픔이 뒤따른다. 고통이 눈앞을 캄캄하게 가릴 때,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가 숨어 기다리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런 인생의 무상함을 알고 계셨나 보다. 작은 사업을 운영하시며 일상 속 작은 위험마저도 조심스럽게 대비하셨다. 두 분이 고
Go the extra mile - 한발 더 나아가세요 우리는 일상에서 때로는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도 있고, 조금 귀찮거나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끝내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조금 더 노력해서 누군가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속상하거나 귀찮아하는 대신 그들이 요청한 것보다 더 많이 도와줌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해보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로 선택하면 상대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지요. 바로 그런 상황으로 이끌 수 있는 말이 <Go the extra mile>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세요’라는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옛날에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일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꿔준 멋진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답니다. 옛날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앙가리아(Angaria)’라는 법이 있었어요.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가는 로마 병사들이 근처에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짐을 1마일 정도 운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법이었죠.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병사들이 나타나서 짐을 날라달라고 하면 어땠을까요
관계 속 거리 두기, 그리고 담백한 삶의 선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의도적으로 형성된 관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과 감정이 얽히며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균형 잡힌 모습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행동이 부딪히며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얼마 전, 오래된 모임에서 그런 피로감을 느낀 일이 있었다. 오랜 인연의 모임이었지만,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한 분이 자신의 삶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분은 자신의 생활이나 소유물을 화려하게 포장해 말하며 관심을 받으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알고도 부추기며 대화를 키우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넘어갔지만,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그분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과장하려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알고도 부추기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
나 홀로 여행 생애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계획을 세웠다. 목적지는 제주도다. 지난 일 년 동안 끝없이 계획하고 포기하기를 수십 번 했지만, 이번만큼은 계획이 아닌 실행이어야 했다. 되도록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제주로 향했다. 지금 이글을 제주도에서 쓰고 있으니 나 홀로 여행에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지인을 통해 조용한 시골 마을인 한경면 신창리에 아담한 단독 펜션을 빌렸다. 주변에 쌍둥이 같은 건물이 두 채 있지만, 아무도 없는지 조용하고 불빛조차 없다. 꿈만 같은 이 시간, 고요하고 적막해서 무서운 기분까지 든다. 이 낯선 느낌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시장을 다녀온다며 집 나선 엄마를 기다리다가 불현듯,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울컥했던 때의 기분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섯 살 무렵, 첫 손녀였던 나를 늘 무릎에 앉혀놓고 막내딸처럼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의 기묘했던 그때의 느낌, 어느 날 갑자기 병풍 뒤에 누워있는 외할아버지를 부여잡고 엄마와 이모들이 왜 그렇게 울고, 불고, 오열하는지, 죽음이란 걸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기억 속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남아있
유연한 사고 더러워진 걸레를 몇 차례 세탁한다고 해서 새 수건처럼 되기 어렵고, 탈색된 상한 머릿결을 새 머리카락처럼 되돌릴 수 없죠. 무엇이든 한번 손상되면 복원이 어려운 것처럼 마음도 그런 것 같아요. 깊게 상처받은 마음은 회복할 순 있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요. 오랫동안 묵혀 심하게 꼬여버린 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을 풀다가 끊기면 매듭을 지어 실을 이어야 하고, 실이 너덜너덜해져 있으면 매듭으로 조절해서 미끈한 실로 잘 연결해야 하죠. 실이 나에게 당장 필요한데, 꼬여진 실만 있고 그 실 안 풀고 그대로 두면 마음이 어때요? 불편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겠죠. 그 실이 만약, 내 인생이 될 수도 있다면요. 내가 태어나는 순간 한번 울음을 터트리고 눈을 떴는데, 앞에 있는 내 실이 이미 꼬여 있다고 하면 반드시, 풀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뭉치 전체가 꼬여 있는 실은 잘 없어요. 미끈하고 튼튼한 실이 짧게 남아 있어도, 그 실이 나를 ‘될 놈’으로 인생 역전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시험을 쳐서 꼴찌 하면 공부할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라고 생각 없이 던진 나의 말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시험성적이 꼴찌라고
Once in a blue moon – 아주 드문 일 <5년 만에 '슈퍼 블루문' 뜬다. 놓치면 14년 기다려야>,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2023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제자들이 강의실에 들어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슈퍼 블루문 뜬대요!” 블루문을 보러 가야 하니 오늘 수업은 일찍 마쳐야 한다며 괜한 핑계를 대고 있었죠. 블루문이 ‘파란색 달’인 줄 알았던 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그저 파란색 달의 의미만이 아니더군요. 제가 알게 된 블루문의 천문학적 의미를 알려주자, 선생님은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쳐다보던 제자들의 짓궂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블루문은 천문학에서 한 달에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을 의미해요. 달의 주기는 29.5일이라서,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뜹니다. 하지만 약 2~3년에 한 번씩, 한 달에 두 번의 보름달이 뜰 때가 있습니다. 31일로 된 달에 1일에 보름달이 한번, 그리고 31일에 또 한 번 뜨지요. 바로 그 두 번째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해요. 실제 달이 파랗게 보이는 일도 있었답니다.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 당시, 하늘이 먼지나 화산재
새해, 다정함을 말하다 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와 다짐을 안고 출발선에 선다.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계획한다. 하지만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힘들고 복잡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날들 속에서 나를 버티게 했던 건 특별한 것보다는 소소한 다정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바로 ‘다정함’이다. 말이란 참 묘한 힘을 지녔다. 따뜻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힐 수 있지만, 반대로 날 선 말은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는다. 특히 요즘 사회를 보면 솔직함이라는 이름 아래 무례함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분명 다르다. 솔직함은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진심을 전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반면 무례함은 배려를 잃은 채 자신의 생각만을 앞세운다. ‘솔직함이 미덕’이라는 말 뒤에 숨은 무례함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차갑게 만들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침묵을 오해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의견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생각 없는 사람’이라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침묵은 때로 더 깊은 배려와 사려 깊은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