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왜 고달프다고 느껴질까요? 집으로 가는 길, 아파트 단지 내, 사색하며 좁은 길로 몸을 틀었어요. 그 길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큰 고양이를 보고 ‘재 뭐야, 무섭게’ 하며 걸음을 멈췄어요. 누가 자리를 피했을까요? 내가 무서워서 뒤돌아 집으로 가버렸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내가 사람인데, 고양이가 도망을 가야지, 왜 내가 피해 간 거지. 경계하듯, 강렬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공격할 것 같던 그 고양이는, 나를 무엇으로 생각했을까요? ‘덩치도 큰 사람이 겁은 많네. 간식이라도 던져주고 가지 뭐야’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시원한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이 오면 길고양이도 따뜻한 장소를 찾아 떠나가겠지요. 그 길고양이의 삶은 어떨까요? 우리네 삶처럼 고달프고 버거울 때가 있겠죠. 삶이 왜 고달프다고 느껴질까요? 기대 이상의 삶과 현실 속의 생활에 괴리가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누군가의 기대에 자신이 부응하고 싶나요? 나의 삶을 살고 계시는가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계시는가요? 목표 달성만을 위해 쫓아가기 바쁜 삶을 살고 계시진 않나요? 삶은 ‘실제 나’와 함께 살아가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요. 자신을 관찰하고,
외할머니의 명품명언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외할머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늘 마음속에서 인자한 미소로 지켜보고 계신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 추억은 외갓집에서의 일이다. 한량 같은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식구가 많은 친정집의 부엌일을 도맡아 하면서 먹거리를 해결해야 했기에 어린 나는 늘 이모들 차지였다. 엄마는 일곱 명의 이모와 외삼촌이 둘인 십 남매 중에 셋째딸이다. 첫째였던 큰이모가 아들 둘을 낳았고, 내가 태어났으므로 난 첫 외손녀가 되었다. 그 시절에도 여자 아기의 인기가 더 좋았는지 이모들은 서로 나를 돌보려고 경쟁이 치열했고, 그만큼 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밝고 긍정적이며 자존감 높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건 외가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기에 마음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90세를 못 채우고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항상 허리가 꼿꼿하셨고, 비녀를 꼽은 쪽 머리에, 맑은 하늘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열 남매를 키우시며 한 번도 큰소리 내거나 매를 든 적도 없었다. 막내 이모는 나와 네 살 차이였는데, 그 이유로 막내로써 마땅히 받을 관심과 사랑을 나와 나눠 가진 셈이
집착에서 자유로: 나를 위한 성숙한 선택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가곤 한다. 때로는 그 관계가 너무나 소중해서 놓지 못하고, 떠나간 사람의 자취를 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한때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들의 일상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되며, 그것은 일종의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집착이라는 감정,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나가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관계가 끝나면 우리는 그 상실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그로 인해 상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고, 또 그의 일상 속에 내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런 마음이 커질수록, 나도 모르게 그의 SNS를 염탐하거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나를 옭아매는 덫일 수 있다. 내가 누구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해도, 그것이 결국 내 삶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시간
아픔도 다리미로 ‘쫙’ 펴지기를 바라요 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추석 연휴 가족프로그램 예능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어요. 어머니의 나이 구십을 넘기고 치매가 찾아왔지만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 고우셨어요. 부부는 4남 1녀의 다섯 자녀와 함께 노래하는 가족이에요. 노부부가 함께한 세월이 칠십 년, 그러나 몇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셨죠. 그 이후 치매 증상이 좀 더 심해졌지만, 딸과 함께 평생 해온 노래를 부르며 옛 기억을 떠올리시더라고요. 그런 딸이 엄마를 향해 말해요. ‘나의 가장 힘든 순간을 위로해 주며,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신 엄마가, 딸에 대한 기억도, 함께 했던 그 소중한 순간도 기억하지 못하지요.’ “괜찮아요! 제가 엄마의 모든 것을 기억할 테니까요!” 100세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응시하며 삼십 년을 더 함께 살자고 말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정이 무뎌지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저 사람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깊은 정을 쌓았구나! 칠십 년 이상을 부부로, 오십 년 이상을 자녀와 엄마로 잘살아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지금은 치매로 음정, 박자가 정확하지는
비 비가 온다. 여름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 가을을 기다리는 마지막 땀방울이다. 30도가 넘는 한낮의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 주니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르겠다. 귓전을 간지럽히는 수많은 빗방울이 땅바닥을 튕기는 소리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준다. 일상에 지친 내게 잠시 쉬어 가라는 듯,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커튼을 쳐 주는 것 같다. 따듯한 차 한잔을 준비하고 소파에 몸을 기대어 본다. 향기로운 생강차 한 모금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빗방울 커튼 사이로 어른거리는 창밖의 풍경은 나를 아련한 기억 속 그날, 그곳으로 이끌었다. 첫 직장을 다니며 3개월째 접어든 꽃다운 나의 스무 살, 그 시절, 나는 참 행복했었다. 비록 월세로 지내는 단칸방에서 엄마와 둘 뿐이었지만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원래는 부모님과 두 동생까지 다섯 식구였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고, 몇 년 후에 아빠와 살던 집에서 가출한 나는 외할머니를 졸라 엄마를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었고, 우리는 무척 애틋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엄마와 나는 같은 회사에 있는 생산부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밤이나
“강사님~ 저는 믹스커피 좋아하는데 먹으면 안 되나요? 몸에 안 좋잖아요” “고양이 똥 커피는 진짜 똥으로 만든 건가요?, 똥인데 어떻게 그걸 먹어요” “저는 신맛이 싫은데 왜 이걸 좋다고 하는 거죠?” 필자가 커피 강의를 진행하며 많이 받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면 청중분들의 이목이 순간 집중이 된다. 커피의 기원, 역사, 식물, 재배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지만 모든 시간을 아울러서 이런 질문이 나오고 답변을 드렸을 때, 청중분들이 가장 집중력이 좋아지고, 형식적인 반응이 아닌 솔직한 반응이 나오며 강의가 훨씬 풍성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과 반응들이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분야의 분들과 수업을 하는데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커피 강의의 특성상 수강자분들의 연령대는 10~70대까지, 직업군도 다양하다.) 항상 비슷한 것들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질문들이 한국인의 커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것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커피에 대한 관심은 수치로 보았을 때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커피 소비량은 1인당 연간 26.2잔 (전 세계 평균 커피 소비량 1인당 연간 14.6잔) 2
스트레스 길들이기 월요일이 되면 두통이 살짝 생기는 것을 느끼는가? 시험을 앞두고 배가 아픈 경험은 없는가? 아니면 짜증을 달고 사는 사람처럼 이미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새겨져 있지는 않은가?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경험이 되었다. 무리한 업무, 끊임없는 인간관계,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도전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혹자는 ‘스트레스가 별거냐, 생각하는 모든 것이 어쩌면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그것쯤은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해야한다’ 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듯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사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느끼는 압박감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인 로버트 사폴스키는 그의 저서 “왜 얼룩말은 궤양에 걸리지 않을까”에서 스트레스가 현대인의 만성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동물과 달리 인간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말했다. 동물들은 사냥감으로 쫓길 때만 스트레스를 느끼는데 반해 사람은 인간관계, 직장, 심지어 가상의 상황에 대해서도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더 많은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고 치열한 경쟁속에 자신을 내던진 채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 곁에서 머무르세요. 그가 말해요. 아빠 제 인생의 가치는 얼마에요? 이 씨앗을 가지고 가서 돈과 바꿔 올 수 있겠니? 씨앗의 가치를 알아보렴. 네가 알아보고 돌아오면 네 질문에 대답해 줄게. 안녕하세요. 슈퍼마켓에서는 이 씨앗을 돈으로 바꿔줄 수 있나요? 알사탕 정도의 가격이 되겠구나! 반갑습니다. 식물원에서는 이 씨앗을 얼마에 사실 건가요? 보다시피 우리 식물원에는 필요 없을 것 같구나. 실례합니다. 할머니 정원에 이 씨앗을 심어보세요. 얼마에 사실 건가요? 네가 갖고 온 이 씨앗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한 씨앗이란다.! 얼마에 사야 할지 상상조차 못 하겠단다. 나는 가격을 매길 수가 없구나! 아빠! 씨앗을 얼마에 바꿔야 할지 모르겠어요. 근데 그게 제 인생의 가치랑 무슨 상관있어요? 사람들은 네 가치를 자신들의 틀에 맞춰서 매기고 판단할 거야! 그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너에 관한 생각과 너를 아는 만큼의 신뢰와 믿음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소중한 가치와는 바꿀 수 없단다. 할머니처럼 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머물렴. 이 작은 씨앗이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열매를 맺을지 궁금하구나! 아주 깊은 뿌리
쉼 쉬고 싶다. 진짜 제대로 쉬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5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일을 해왔는데 쉬는 방법을 몰라 고민하게 될 줄이야. 아마도 진짜 제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기 때문인가 보다. 고민하는 김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겠다. 쉼이란 무엇일까? 그의 사전적 의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것’이다. 먼저 하던 일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런데 머리가 쉬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멈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을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을까? 생각해 봐도 통 모르겠다. 너무 많은 생각이 뒤엉켜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실타래를 찬찬히 풀어 가면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심호흡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갑자기 가슴이 뛴다. 처음 하는 일을 마주할 때처럼 긴장되고 설렌다. 재미있을 것도 같다. 쉬고 싶었는데 제대로 쉬려니 또 일이 하나 생긴 셈이다. 내가 제대로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따로 있다. 며칠 전 일이다. 함께 연극 활동하던 후배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여러 가지 부업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
속도를 높이는 경영을 하라! 필자는 교육 생태계(Education Ecology System)라는 관점에서 교육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교육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다음 질문에 대한 정답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숲속 생태계의 모습에서 초원 생태계로 변화되고 있는가?” 여러 맥락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초원화’가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숲(Forest)는 나무가 많기 때문에 공간적, 시각적 개방성이 낮지만 초원(Grassland)은 나무가 거의 없거나 드문드문 자라기 때문에 공간적, 시각적 개방성이 매우 높다. 이로인해 초식 동물들은 대구모로 무리를 지어 이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확보되는 것이다. 숲은 생태적으로 볼때도 매우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의 밀도와 그늘, 덩굴 등은 외부의 종이 쉽게 못들어 오도록 경계하는 역할을 하여 먹이사슬과 종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원활하게 된다. 반면 초원은 넓은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외부의 생물들이 쉽게 유입되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부 영향에 대한 수용성과 변화 대응력이 매우 좋아서 생물 다양성이 증가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